나도 나를 어쩌질 못할 때
어느 날처럼 눈썹칼로 눈썹을 다듬고 있었다. 그러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텅 비어 있는 눈동자를. 가만히 눈동자를 바라보다 눈썹칼을 든 손은 손목을 향해 움직였다. 차가운 칼날이 살과 맞닿아 마찰이 되어 지나가는 느낌... 조금만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피가 솟구쳐 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칼날이 스칠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세워져 전율을 일으켜 뇌에 섬광을 일으켰다. 한마디로 희열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정신을 차리면서 찾아든 건 자기혐오였다. 짜증과 경멸..... 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된 거였어...
그리고 그 날 오후. 정신건강의학과병원을 가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심호흡을 하고, 명상을 들으면서 말이다. 입 밖으로 천천히 차분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이야기하기 싫고 말하는 게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그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 괜찮았다. 응..., 안 괜찮더라고....
내 안 에는. 아주 나쁜 꼬맹이가 사는데. 본인이 화가 나면 화살을 마구잡이로 쏘는 꼬맹이가 있다. 그 꼬맹이는 화를 주체 못해 부들부들 거리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땡깡을 피우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독설을 내뱉기도 한다.
겁이 많은 꼬맹이라 그런걸 나는 안다. 아직 덜 큰 거지. 근데 그 꼬맹이가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나오려고 하더라고. 왜 갑자기 튀어나오려고 했냐고?
그날따라 선생님의 눈빛이 너무 빛나 보였거든. 그래서 심통이 난거야. 내 죽어 있는 눈빛을 본 날이었으니까.
순간 내 안의 꼬맹이가 무서워졌다.
내가 선생님을 파괴할까봐 무서웠다. 다른 사람을 파괴할까봐. 다른 이들이 세워놓은 안전한 성을 꼬맹이가 무너트리고 파헤칠까 무서웠다. 꼬맹이를 컨트롤 못할까봐 내가 무서워졌다.
그 순간이 지나 저녁이 되니 화가 난 꼬맹이는 사라지고 다시금 평상시의 나로 돌아왔다. 평온해졌다. 다시 일상이 되었다.
이런 일이 또 반복되지는 않겠지? 그렇게 두지 않을거다. 이건 그저 갑작스런 충동에 의해 벌어진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