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세 번 이상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괜시리 불안하던 때가 있었다. 인맥도 스펙이라며 얕고 넓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기도 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쌓는 외향형과 달리 밖에 나갔다 하면 방전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외향적 인간형은 인싸, 성공하는 인간의 표본형 등으로 불린다. 타고 나기를 내향적으로 태어난 사람들조차 이런 분위기에 맞추어 꾸역꾸역 '생계형' 외향적 인간이 되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좋든 싫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다른 동물에 비해 취약한 '하드웨어'를 지닌 인간은 모여 살기를 통해 멸종되지 않고 살아 남았을 테고 그 결과로 우리의 DNA에는 타인과 함께 해야 한다는 본능이 자리잡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수 만년간 쌓여온 진화의 산물 아닐까?
관계가 단절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없을 때 인간은 자칫하면 고립되어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20대 중반에 5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여진 깡통같다는 생각이 들 때 학교 학생회, 각종 소모임에 가입해 소속감을 찾으려고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친구들을 만나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 관계를 이어 나아가려고 애썼다. 늘상 회사 얘기를 하며 친근함을 나누던 친구들과는 이미 삶의 방향이 많이 달라진 터라 접점을 찾기 힘들었음에도 그 때는 어떻게든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원체 내향적인 나는 혼자 있을 때 내면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지만 그럼에도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했다. 소외되고 남들에 비해 뒤쳐질 거라는 형태 없는 불안감을 안고서 말이다. 대학원에 갔을 때도 발을 넓히려는 시도를 종종 했었다. 학교 행사가 있다 하면 찾아 가고, 친구의 친구네서 한다는 파티들을 쫓아다니고... 혼자 있는 시간이 좋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모순을 안은 채 바쁜 나날을 보냈고 그러다가 대자연에 둘러 쌓인 베르골로에 오게 됐다.
역시나 처음엔 이 곳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밤 같이 웃고 떠들며 술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년 만에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감기 몸살을 크게 앓았다. 그 때부터 였던 것 같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 좁은 방에 누워 혼자 누워 있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흩어졌던 에너지를 모으고 마음 속 배터리를 충전했다. 다 낫고 나서부터는 혼자 종종 산 아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저녁 노을을 보며 음악을 듣기도 하고, 가벼운 등산을 하며 땀을 흘리곤 한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에서 나 홀로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더 배우고 알아가고 있다.
물론 나도 인간인지라 가끔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렇지만 자유롭게 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인생을 통틀어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게 나를 달래며 맑은 하늘과 나무들을 벗 삼아 두 다리에 의지해 산길을 터벅터벅 걷는 주말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