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골로에서 보는 노을

by 양구

요 근래 날씨가 매일 궂다. 해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내민다 싶으면 물 만난 강아지마냥 퇴근 후 예배당 언덕으로 달려가 일인용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는다. 잔디밭에 누워 음악을 듣고 책을 읽다가 어느 새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해가 멀리 보이는 알프스 산 자락에 닿을락 말락 기울어져 있다. 서머타임 제도로 낮이 길어진 탓에 8시 반 쯤 되어 서야 해가 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해 지기 전 마지막으로 불타는 햇빛은 맨눈으로 보기 힘들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태양신 라는 매일 일출과 함께 새로 태어나고 일몰과 함께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오늘 생이 다하기 전 마지막 힘을 한껏 쥐어 짜내어 어둠이 오기 전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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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산 자락에 걸린 해가 고개를 넘어 자취를 감추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그는 이미 강렬한 빛을 잃고 저 너머로 숨어 버린다. 5시 반부터 잔디밭에 누워 해가 지기까지 세 시간을 기다린 것에 비해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어찌하랴! 오묘한 자연의 규칙을 탐미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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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빛과 쪽빛이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하늘을 보고 있자면 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그 동안 도시에서만 살아온 탓에 높은 빌딩 숲에 가려진 노을을 보는 것은 특별한 날에나 부릴 수 있는 사치였다. 시골 생활에 질리지 않고 잘 살 수 있을지 걱정했던 지난 날이 무색하게 베르골로에서는 5분만 걸으면 매일 이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해 지는 모습이 다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구름의 모양과 바람의 세기에 따라 매번 빛과 하늘의 색깔이 다르다. 강렬한 붉은 빛부터 연분홍색,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 등으로 온 하늘이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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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아 가시거리가 긴 낮에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알프스 산맥의 실루엣은 아이러니하게도 노을이 지고 어둑해질 무렵에 가장 잘 보인다. 우리 삶에서도 가장 빛나는 자리에 있을 때 보이는 세상과 그 자리에서 내려온 뒤 보이는 세상이 서로 다르지 않은가. 강렬한 빛과 그림자는 뗄 수 없는 존재다. 빛이 어느 정도 수그러든 다음에야 그늘졌던 곳이 드러난다.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강한 빛으로 온 세상을 호령하는 사람보다는 그늘진 곳까지 닿아 은은한 빛을 나눠 주는 노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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