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들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알아 가는 중

by 양구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NGO는 총 인원 10명 남짓의 매우 작은 단체이다. 매년 3-4명의 자원봉사자와 코디네이터 한 명이 선발되어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베르골로에 머물며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이나 2030대를 위한 트레이닝 코스를 기획, 운영한다. 그 외에도 비정기적으로 인턴을 뽑아 봉사자 업무를 지원하거나 아예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를 맡기기도 한다. 나는 대학교와 연계된 6개월 인턴으로 이 곳에 오게 되었다. 전공이 관광 및 문화재 경영학인지라 NGO의 주 업무인 청년 교류 활동보다는 베르골로의 관광 산업 개발 및 문화재 보존 프로젝트에 중점을 맞춰 일을 하고 있다. 그 덕에 다른 네 명의 봉사자들과는 업무를 공유하지 않고 나름 독립적으로 NGO부대표인 슈퍼바이저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NGO는 베르골로의 3층 빌딩을 임차하여 2015년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1층은 사무실, 2층과 3층은 나와 코디네이터, 봉사자들이 사는 플랫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인턴 한 명이 더 오기로 했었고 그와 내가 사무실에서 5분 정도 떨어진 통나무 별장에서 월세를 반반 내며 살기로 했다. 그러나 업무 시작일 한 달 전 갑자기 비자 발급이 거절되어 그는 오지 못했다. 월세를 혼자 감당할 수 없던 내 사정을 감안하여 NGO측에서는 급하게 2층 플랫의 비어있는 복도 한 켠을 방으로 개조하여 내가 살 곳을 마련해 주었다. (물론 월세는 내야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인 코디네이터는 혼자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하우스 메이트를 맞이하게 되어 처음엔 좀 당황했다고 했다. 나와 코디네이터는 방을 각각 따로 쓰지만 3층에 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한 방을 두 명이서 나눠 쓴다. 이들과는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같은 건물에서 사는 탓에 나름 가까워(?)지긴 하였으나 워낙 살아온 배경과 성격, 가치관 등이 달라 막역한 사이까지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배경과 과 삶의 방식을 알아 가고 있다. 한국에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고 그 후에 대학을 재직자 전형 과정으로 진학했다. 그 와중에 알게 된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사실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 온지라 세상엔 다양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크게 체감하지는 못했다.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만난 외국인 유학생 친구들 또한 나와 비슷한 아카데믹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 삶의 다양성에 대해 느껴볼 새는 없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만난 코디네이터와 자원봉사자들은 정말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어왔고 그들의 이야기는 주류의 삶이나 안정적인 길을 꼭 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선사한다.


1. 코디네이터 (내 하우스 메이트, 이탈리아인): 20대 후반까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회의감을 느끼고 퇴사. 그 후 NGO 주체의 청년 교류 프로그램과 트레이닝 코스 여러 개에 참여하며 이 쪽 분야에 매력을 느끼고 현재는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2. 봉사자 1 (스페인): 대학에서 미디어 영상학과 재학 중 현장과 동떨어진 원론적 수업과 시험에 질려 중퇴했다. 유럽 연합의 청년 교류 프로젝트를 알게 되어 참여했고 그 후 본인의 고향에서 친구들과 NGO를 설립해 일하던 중 베르골로의 우리 NGO와 연이 닿아 자원봉사자로 파견되었다. 사실 6개월만 일하고 돌아가려 했으나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매료되어 결국 1년을 채우기로 결정했다.


3. 봉사자 2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후 방송 연출에 관심이 생겨 아카데미에서 미디어/영상 연출을 수료했다. 그 후 관련 직업을 찾지 못해 슈퍼마켓에서 매니저로 일을 하다 단기 자원 봉사 프로그램과 청년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장기 프로젝트에도 욕심이 생겨 베르골로에 오게 되었다.


4. 봉사자 3 (시리아/루마니아): 시리아인 아버지와 루마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시리아에서 스무 살까지 나고 자랐으나 내전으로 인해 루마니아로 이주했다. 그 후 대학에서 전기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석사 과정까지 마쳤다. 루마니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어느 날 직업에 환멸을 느껴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휴대폰을 끄고 극장에서 가서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본 후 다시 전원을 켜 상사에게 퇴사를 통보했다. 그 후 휴식하며 뭘 할지 알아보다 베르골로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지원하였다.


5. 봉사자 4 (라트비아): 이 친구는 이미 스무 살 때부터 퀴어 및 청년 관련 NGO활동을 하여 자원봉사 프로그램과 청년 교류 프로젝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라트비아의 NGO에서 일하던 중 다른 프로젝트에서 만났던 지인에게 베르골로의 프로그램에 대해 듣고 지원했다. 재미 있는 점은 봉사자 1과 이미 건너 건너 알던 사이라는 것. 봉사자 4가 프로그램에 지원했을 때 그의 평판을 익히 알고 있었떤 봉사자 1이 NGO대표에게 그를 추천하여 최종 선발되었다.


사실 이들 모두 EU에 속한 유럽인이기에 전혀 다른 곳에서 온 외국인인 나와 접점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주제도 적고, 서로의 고충을 깊이 이해하기도 어렵다. 다만 이들의 이야기는 세상과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바라보는 내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혀주었다. 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로 둘러 쌓여 있던 나는 어쩌면 차안대를 쓴 경주마처럼 앞에 놓인 트랙만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결코 늘 편하지만은 않지만 좀 더 깨인 시각으로 세상을 다르게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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