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 Positive

다이어트 일대기

by 양구

3.9kg 우량아로 태어난 나를 보며 엄마는 내가 꽤 건강한 아이로 자라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예상과는 반대로 8살 전까지 나는 겨울이면 감기를 달고 사는 잔병치레가 꽤나 잦은 어린 아이였다. 고기나 생크림같이 조금이라도 느끼한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아 할머니를 종종 당황케 했다고 한다. 깨작깨작 새 모이만큼 밥을 먹던 아이는 당연하게도 깡마른 상태로 초등학생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식습관이 변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오후 수업을 하면서 제공되던 급식이 맛있어서 그랬는지, 성장하면서 더 많은 열량을 필요로 했는지 아니면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나눠 먹던 불량 식품 맛에 길들여져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됐는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떡볶이, 쌀밥, 라면 등 자극적인 탄수화물을 자주 섭취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깡마르던 몸은 소위 말하는 통통한 몸으로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 이후로 내 인생에서 '깡마른 시절'은 꽤나 먼 과거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90년대 초반 생들은 공감하겠지만 당시 '여자' 초중딩들 사이에선 '예쁜 어린이 되기', '초등학생 다이어트', '잘나가는 어린이 패션' 등 코르셋을 강요하는 만화책이 한참 유행했었다.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마르고, 예쁘장하고, 나풀나풀대는 옷을 입기를 좋아하는 열두살 가량의 여자 아이들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내 몸을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재단하고는 했다. 미디어의 '완벽한' 몸매를 가진 연예인들이나 만화책의 주인공들, 또는 인기가 많았던 또래 학교 친구들과 비교를 했다. 중학생이 되어 공부량이 늘어나는 대신 활동량은 줄어들자 살이 더 불어나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신체 검사에서 과체중 판정을 받으며 몸무게 정점을 찍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 때까지 스트레스를 약간 받기는 했어도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아직 괜찮다 괜찮다 해준 할머니 덕분이었을지도.


본격적인 다이어트 인생이 시작되던 때는 고3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선생님들과 부모님은 아무리 서류가 완벽해도 면접에서의 첫인상이 합격을 좌우한다며 방긋방긋 웃는 얼굴과 바른 자세, 그리고 적절한 체중 관리를 강조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리여리'한 여성상에 맞추기 위해 밥 공기를 반씩 덜어가며 미용 몸무게를 추구했다. 취업 후에는 풀어진 긴장 탓, 그리고 폭식성 스트레스로 인해 다시 살이 불어오르기 시작했다. 원체 운동을 싫어해 주말엔 몸을 꼼짝하지 않고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그 와중에 삼시세끼는 물론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큰 결심을 하고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건강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을 정도로 살이 쪘던 것도 아닌데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끊임없는 자기 혐오에 시달렸다.


그렇게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절식 수준으로 식사를 하고 밥을 먹으면 30분 뒤에 강박적으로 밖에 나가 운동하며 칼로리를 소모했다. 약 10kg정도를 감량하며 뿌듯함을 느끼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분 부분의 살들이 눈에 거슬렸다. 팔뚝살, 허벅지살 빠지는 운동을 유튜브에 검색해가며 매일 밤 피곤함에 찌든 몸을 억지로 이끌고 요가매트 위에서 결코 즐겁지 않은 운동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폭식을 반복하며 요요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10kg를 뺀 후 12kg를 다시 얻어 옷을 새로 사야했고 오랜 만에 만난 동창에게 왜 이렇게 갑자기 살이 쪘냐는 반갑지 않은 안부 인사를 듣기도 했다.


교환학생으로 독일 가기 전까지도 해외에서 살며 '인생샷'을 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 한 달간 '빡센' 관리 모드에 돌입했다. 잦은 음주와 기름진 음식들로 인해 결국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땐 다시 10kg이 넘게 쪄버린 상태였지만. 다시 독일에 돌아가기 전 바쁜 생활로 인해 저절로 살이 다시 빠졌지만 가장 말랐었던 무게까지는 도달할 수 없었다. 새모이만큼 먹고 강박적으로 몸을 움직이던 시절의 나는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머리를 쥐어 뜯었지만, 그 후 이미 두 세번의 요요를 겪은 나는 조금이나마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니까. 남들의 시선을 덜 신경쓰고 외모 강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지금은 강박증이던 시절과 달리 1~2kg에 연연하지 않는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건강에 좋지 않을 만큼 체중이 불어났다 싶으면 식단 조절을 하고, 활동량이 적은 날을 보내면 그 다음 날엔 조금이라도 걸으려고 한다. 가뜩이나 삶을 살며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내 몸을 비난하고 괴로워 하는 일까지 추가하고 싶진 않다. Body Positive를 실천하며 나를 좀 더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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