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층간소음에 대하여
한 달 렌트비가 205유로 밖에 하지 않는 기숙사에 뭘 바라느냐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방음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방에 앉아 오랜만에 책이나 한 권 읽어볼까하면 룸메가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정답게 통화하는 소리, 옆 집 이웃의 독일 힙합 음악 소리 (무척이나 공격적인 사운드이다!), 기숙사 앞마당에 삼삼오오 모인 유학생들 떠드는 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그나마 밤 열한시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자정을 넘어 잠들 수 없을 정도로 울리는 날엔 그 날 잠은 다 잤다고 봐야 된다. 기숙사에 산지 반 년이 조금 넘어가는데 여지껏 경험했던 소음 중 탑 쓰리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조명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기숙사 앞마당에 간헐적으로 모이는 이들이 있다! 뱀파이어 모임이라도 하는 건지 굳이 밤에 모여 서로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가운데 정답게 얘기를 나눈다. 말이 대화지 사실상 주사가 묻어나오는 고성방가나 다름없다. 여기에 파티 음악까지 합세하면 이제 막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이려는 기숙사 세입자들에겐 지옥이 따로 없다. 창문을 아무리 꽉 닫아도 틈새로 흘러나오는 소리를 막을 수 없다. 하루는 무슨 파티를 하는지 그 소리가 새벽 3시까지 멈추질 않았다. 결국 그 날은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빗소리만 8시간 재생되는 유튜브를 켜놓은 채로 잠들었다. 잠을 제대로 자긴 했냐고? 그럴리가 있는가. 6시간을 채 못잤는데 그마저도 반은 뒤척이며 온갖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몸부림쳤다.
불평하기 전에 앞서 내 룸메와 이웃은 꽤 괜찮은 사람임을 밝힌다. 이들은 매우 상식적이며 친절하다. 적어도 밤에 큰 소리를 내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는다. 위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주로 낮에 통화를 한다. 다만 길어지는 통화가 과제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은 나를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모기처럼 거슬리게 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무엇이 문제인가? 이들은 여느 시민의식이 뛰어난 젊은이들처럼 선을 지키며 행동하지 않는가? 전적으로 이들을 탓하지는 않겠다. 다만 30년이 넘은 기숙사 건물의 뛰어난(!) 방음 시설이 나를 괴롭힐 뿐이다. 대학가의 불법 개조 원룸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얇은 합판을 벽 삼아 빌라 한 세대를 무려 세 개의 원룸으로 나누는 지독한 자본주의 매직을 말이다. 놀랍게도 이 건물은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무려 공산주의 체제의 동독에 세워졌다. 한정된 자원과 최저비용/최고효율 앞에 이념 논리란 낡아빠진 행주처럼 결국 그 색이 다 바래지 싶다.
경험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유학생들은 늦은 밤에 파티를 연다든지, 큰 소리를 친다든지,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든지 등의 '남에게 민폐끼치는' 행동은 잘 하지 않는다. 뭐 딱히 유학생들의 도덕 수준이 현저히 높다기 보단 타국에서 괜히 소란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몸사림때문이라고 하겠다. 조용히해야 하는 시간이 법적으로 정해져있는 독일에선 층간 소음으로 경찰을 부르거나 심지어는 법적 다툼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지독히 괴롭히는 것은 의외로 독일 현지 학생들인데 주의를 줘도 그 때 뿐이다. (독일인들은 매우 조용하고 매너가 좋을 것이다 라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특히 알콜을 동반한 무리에게 상식이란 통하지 않는다.)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다시 방으로 올라와 침대에 누우려고 하면 어느 새 그들 특유의 힙합 또는 락 음악이 고막을 때린다. 어느 날은 정말 살인 충동이 들어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경찰을 불렀다. 더듬더듬 되도 않는 독일어로 꾸역꾸역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신고한지 40분 정도 지나니 음악이 멈췄다. 경찰이 와서 경고를 했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음악소리가 사그라든지 약 20분 정도 더 지나고 누군가 우리 방 벨을 눌렀다. 키가 멀끔하게 큰 경찰 두 명이 현관 앞에 우뚝 서있었다. 신고한지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이제서야 오다니! 무슨 우연의 장난인지 경찰이 오기도 전에 음악은 멈췄고, 그들은 상황을 물어보더니 더 이상 소음이 발생하지 않아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했다. 그들은 허무하게 떠났고 나는 소음과 일련의 사건들의 여파로 밤잠을 설쳤다. 이들은 일이주에 한 번씩 파티를 하는데 그 때마다 우퍼스피커를 사서 황병기의 미궁을 밤새 틀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앞으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기숙사에 절대 살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두 번씩이나 경험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