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요즘엔 클라이밍이 제일 재밌다.

물론 일이 재미있을 리는 없으니까.

by 김방통

그치. 크루즈 여행 중이 아니라면야, 하루하루가 재미있기는 힘들다. 별일 없이 주중엔 출근하고 주말엔 늦잠 자는 직장인의 시간이라면 더욱.


연초에는 정신이 없었다. 두 달안에 방을 구해야 했다. 동시에 이직을 준비했다. 전세 매물은 거의 없었다. 짬을 내어 이력서를 썼다. 전세 대출은 답답하게 진행되었다. 면접에서는 큰 실수를 했다. 잠이 안 왔다.

가까스로 두 일을 매듭지으니 이미 3월이었다. 거대한 일들은 날 지치게 했다. 그때 문득 벽에 매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꽉 붙잡고, 근육에 태곳적 젖 먹던 힘까지 주고, 추락의 공포를 등정의 기쁨으로 바꾸고 싶었다. 즐겁고 짜릿한 일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렇게 클라이밍이 눈을 돌렸다. 까마득한 절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르는 운동. 클라이밍은 다운힐, 스케이트보드, 윙슈트와 함께 위험과 극한을 추구한다는 소위 '익스트림 스포츠'로 분류되고는 한다. 나도 <클리프 행어(1993)>의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미션 임파서블 2(2000)>의 탐 크루즈처럼 외마디 비명으로 벽을 기어오르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찾아갔다.

그런데, 겪어보니 클라이밍은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어떤 루트로 벽을 올라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니 머리를 쓰게 되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지를 찢어가며 멀리 있는 홀드를 잡아야 하니 유연성도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클라이밍은 익스트림보다는 체스, 혹은 발레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 매달려서 두는 체스, 혹은 중력에 반하여 추는 독무인 것이다.


그렇게 이직 한 달 후인 4월부터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겨우 반년이 돼가는 지금은 클라이밍이 제일 재밌다. 날은 덥고, 수영은 질렸고, 악기는 마지막으로 건드린 지가 까마득하고, 물론 일이 재미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쓴 클라이밍에 대한 글을 읽고 싶어 졌다. 그래서 브런치와 서점을 뒤졌다.


하지만 클라이밍에 대한 글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되는 열 권 가량의 책은 전부 교과서에 가까웠고, 그나마도 반절은 절판이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내가 찾지 못한 클라이밍에 관한 멋진 글을 안다면 꼭 알려달라!) 수영도 있고 요가도 있는데 왜 클라이밍은 없을까? 잠깐 생각해 본 결과, 클라이밍을 하고 돌아오면 손가락과 손목이 아파서 글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매우 그럴듯한 결론에 도달했다.



클라이밍 일기를 꾸준히 써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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