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빨강 5번 풀었음!
빨강 5번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도전했지만 거의 2달 넘게 풀지 못한 문제였다. 이 문제는 사진 오른쪽 아래 보이는 커다란 홀드에서 시작하는데, 꽤나 골치 아픈 난관들이 단계마다 있다. (1) 우선 시작하자마자 몸을 왼쪽으로 날려 진한 초록색 벽에 붙어있는(사진에서는 초크가 묻어 허옇게 보이는) 조그만 홀드를 잡아야 한다. (2) 결코 잡기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이 홀드를 잡은 다음에는 수직한 벽으로 뛰어 올라서 붙어 있는 조그만 홀드를 잡는다. 그러고 나서야 왼쪽 벽으로 건너갈 수 있다. (3) 왼쪽 벽의 홀드들도 손가락 힘을 써야 하는 종류의 조그만 것들이라, 매달리기 쉽지는 않다. (4) 마지막 완등 홀드도 어중간하게 생겨서 마지막에 카운터발란스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나는 (2) 단계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말 그대로 자꾸만 발이 미끄러졌다. 발을 넓게 벌려야 하는데, 그 상태에서 높은 곳에 붙은 홀드를 잡으려 하다 보면 자꾸만 오른발이 (가끔은 왼발이)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다. 발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은 또한 무서운 경험이기도 했다. 팔의 힘이 빠져서 떨어질 때는 언제 떨어지게 될지 추측이라도 할 수 있지만, 발이 빠지는 것은 정말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에 도전하는 것이 무서워졌고, 차츰 멀리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야 이 문제를 풀었다. 보다 덜 미끄러지는 새 암벽화를 신고 자신감을 가진 채 다시 문제를 풀어봤는데, 푸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분홍색 볼륨에서 자꾸만 오른발이 미끄러졌던 건 오른발에 체중을 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물리 시간에 마찰력이 마찰계수와 수직항력의 곱이라 배우지 않았던가. 오히려 오른발에 체중을 실으니 발을 고정하고 균형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두 발을 고정한 다음, 뛰어 올라서 작은 홀드를 잡는다! 이때 엄지를 써서 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두 달 만에 문제를 풀고 너무 뿌듯해서 처음으로 동영상 촬영도 해봤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왜 동영상을 찍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찍어보니 도움이 많이 된다. 내가 발을 몇 번이나 헛디디는지, 머뭇거릴 필요가 없는 구간에서 얼마나 시간을 허비하는지, 팔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어떤 불필요한 자세를 취하는지 알 수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어려운 문제 풀고 동영상 기록을 남겨 놓으려고(바지에 택은 좀 집어넣고).
여튼 빨강 5번 문제를 풀면서 역시 실마리는 마음에 있었다고 느꼈다. 특히나 클라이밍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중요한 운동이다보니. 안풀리던 문제를 풀고 나니 클라이밍이든 뭐든, 좀 더 용기를 가지고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