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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방통 Jun 25. 2020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어렵네 - 모차르트를 다시 쳐보다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 309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7번(K. 309) 1악장, 파질 세이 연주.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두 번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를 때, 그리고 나이를 먹고 무언가를 알게 되었을 때.


모두 그러하듯이 나도 초등학생 때 피아노 학원에서 모차르트를 처음 만났다. 아마 소나티네 몇 곡을 친 다음이었을 것이다. 많은 멜로디 중에서도 특히 두 곡이 명확히 기억에 남는데, 이 곡들로 동네 콩쿨도 두 번 나갔기 때문이다. 한 번은 소나타 7번(K. 309) 1악장을 쳤고, 한 번은 소나타 14번(K. 457) 1악장이었다(콩쿨 결과는 좋지 않았는데 추운 날 선생님이 사준 떡볶이를 먹은 기억이 남아 있다).

콩쿨이라고 열심히 쳤던 건지, 이 곡들은 십몇 년이 지나고 다시 들어도 기억이 날 정도였다. 특히 마음에 든 건 웅장한 도입부를 지닌 소나타 7번이었다. 오케스트라의 투티를 연상케 하는 팡파르에 이어지는 대조적으로 조용하고 귀여운 멜로디. 학원 선생님께 열 살 무렵에 쳤던 곡을 서른둘에 다시 치겠다고 말씀드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머리와 손이 살짝은 기억하고 있을 테니 별 어려움 없이 칠 수 있겠지? 당연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암초를 피해 가는 초심자 아니면 모든 문제, 모든 난관을 하나하나 넘어선 위대한 비르투오소가 가장 잘 연주하는 것 같아요.”


<음악의 기쁨> 2권에서 롤랑 마뉘엘이 하는 이 말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할 때 더할 나위 없이 잘 적용된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듣기 편하다. 멜로디는 직관적이고 화성이 난해하지도 않다. 형식이 난해하지 않지만 변화의 모습이 창의적이라서 질리지도 않는다. 우선 악보부터가 접근하기 편하다. 쇼팽과 비교해보라. 옆에 샾이나 플랫이 대여섯 개씩 붙어있진 않잖아?


그런데 막상 치려고 하면 너무너무 어렵다. 선생님께 들은 몇 가지 지적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1) 왼손이 오른손보다 크고 굼떠서 곡이 물먹은 종이처럼 무겁고 눅눅해진다. (2) 음악에 생동감을 부여해 줘야 할 꾸밈음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나올 때마다 연주를 걸고넘어진다(바흐 연주 때부터 있던 일이라 놀라진 않았다). (3) 가볍고 활기차게 들려야 할 화음을 어떤 베토벤이나 브람스처럼 너무 대단하고 무겁게 치고 있다(마치 칠십 평생 금욕적으로 살다 간 모차르트처럼).


경쾌함과 가벼움! 모차르트의 이 미덕이야말로 어른이 된 내기엔 너무나 어려웠다. 차라리 세상의 괴로움을 다 짊어진 듯한 고뇌를 위악적으로 부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물론 모차르트 연주는 어렸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즐겁다. 그가 심어놓은 음악적 상상력은 악보 마디마디마다 넘쳐흘러서, 원래의 멜로디가 5도 위에서, 단조에서, 왼손에서 변주되는 것을 느낄 때마다 즐겁다. 아마도 ‘순수한 즐거움’에 가장 가까운 음악을 고르라 하면 모차르트의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 순수한 즐거움이 어른이 된 지금은 닿기 힘든 이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차르트는 선생님 몰래 연습 안 하고 사과에 색깔을 칠하는 그런 어린이들이 고민 없이 즐겁게 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경쾌한 가벼움이야말로 어린이와 모차르트가 공유하는 감정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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