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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방통 Oct 20. 2020

백건우의 슈만, 눈 위에 새겨진 꿋꿋한 발걸음같은

슈만, "유령 변주곡 WoO 24" 5번 변주



슈만을 잘 모른다. 백건우의 공연에 가기로 한 건 그래서였다. 평소에는 생각지 않던 새로운 음악을 들어보고, 어쩌면 그 와중에 마음이 가는 음악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피아노 협주곡과 퀸텟 등의 몇몇 작품을 좋아하지만, 슈만의 피아노 독주 작품엔 문외한이었다. 크라이슬레리아나와 아베끄 변주곡을 들으면서 화려한 작품을 많이 썼다고 지레짐작했다. 그런 선입견을 품고 공연장에 갔다. 모든 곡이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곡을 하나만 찾아도 성공인 보물찾기에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공연을 보기 전엔 열정이 고루 녹아있는 “세 곡의 환상 소곡집 op. 111”이 가장 좋았다. 완급을 조절하면서도 모든 악장에 고루 녹아있는 열정에 마음이 동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가장 긴 여운을 남긴 건 마지막 곡, “유령 변주곡 WoO 24”였다.

제대로 된 작품 번호가 붙어있지도 않은 유령 변주곡은 슈만이 마지막으로 쓴 음악이다. 천사가 들려준 주제로(그러나 이 주제는 이미 바이올린 협주곡의 2악장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네 개의 변주곡을 작곡한 그는 1854년 2월 27일 밤 다시금 라인강에 뛰어들었고, 구조된 이후에는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가 버린다. 그 병동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변주곡이 완성되었다.



백건우는 마지막 변주곡을 다른 연주자들보다도 훨씬 느린 템포로 연주했다. 수많은 음표가 찍혀 있는 이 변주의 오른손은 맨 위를 흐르는 멜로디와 중간의 반주 음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콜로프나 안데르체프스키가 빗방울이나 별이 흐르는 양 작고 가볍게 연주했다면, 백건우의 연주는 이들보다 거의 2배는 느리게 흘러간다. 아니, 흘러간다기보다는 걸어간다. 이렇게 느린 템포에서, 악보를 수평으로 움직이는 멜로디의 틈새가 벌어지자 귀는 멜로디 밑의 반주 음들을 개별적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 곡이 멜로디와 반주가 여러 성부를 가진 것처럼 들리도록.

특히나 귓가에 울린 건 끝없이 반복되는 내성이었다. 꾹꾹 눌러 디딘 것 같은 그의 음표들은 마치 몰아치는 눈보라에도 굴하지 않고 떼어내야 하는 힘겨운 발걸음처럼 들렸다. 끝이 보이지 않고 끝에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살아있음으로 떼어야 하는 순간의 발걸음들.

이 연주가 무한한 시간 동안 반복되리라 상상한 순간 연주가 끝났다. 내가 받은 감동을 내 것으로 만들기도 전에, 끝과 박수가 너무 빨리 쏟아졌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서 다시 변주곡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가을이라 그런지, 요즘은 작곡가들의 말년의 작품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브람스가 홀로 작곡하여 편지로 보냈던 음악과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환영을 보며 썼던 음악. 슈만은 이 곡을 쓰고 2년이 지나서 죽었지만, 클라라 슈만은 생전 유령 변주곡을 연주한 적이 없었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후에 쓴 이 곡을 슈만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버림받았던 유령 변주곡이 출판된 것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39년에 이르러서였다.


유령 변주곡을 다시 들으며, 나는 어쩌면 클라라 슈만이 이 곡의 솔직함을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초기 작품의 화려함을 걷어낸 주제는 뼈대만 남은 겨울의 나뭇가지처럼 마음을 차갑게 울린다. 무의식적으로 내면을 열어 보이고, 그리하여 공허한 내 마음을 대면하게 만드는 곡들. 그리고 클라라 슈만이 피한 그 시선을 바라보며 꿋꿋이 걸어가는 듯한 백건우의 연주도 함께 생각한다. 그가 지난 밤 들려준 마지막 변주를, 그 발걸음들을 아마 오래도록 잊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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