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째 수업 : 바흐, 이탈리아 협주곡 BWV 971, 1악장.
10월 23일 금요일, 17번째 수업.
바흐 : 이탈리아 협주곡 BWV 971 1악장
피아노 수업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바빠서, 내가 바빠서, 서로 밀리다가 근 한 달만에 수업을 갈 수 있었다. 이전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거의 까먹기 직전의 상태로. 몸이 좋지 않았지만 꼭 수업을 가고 싶었다. 오랫동안 끈 이탈리아 협주곡 1악장을 마무리 짓고 싶어서였다. 지난 달, 격무에 시달리는 동안 업무 스트레스에서 도피하기 위해 피아노를 쳤다. 격무가 끝나고 나니 악보를 다 외울 정도로. 이 기세를 타고 1악장을 끝내고 싶었다.
지난 수업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조언은 “음을 힘들여 하나하나 치지 마세요”였다. 이렇게 치면 음 하나하나가 끊어져 크라프트베르크보다 더 딱딱하고 기계적인 소리가 난다. 그렇지만 나는 손가락이 잘 돌아가지 않으니 스케일을 틀리지 않으려 애쓰다 긴장하고, 그러다 보면 그런 딱딱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부분을 생각하면서 많이 연습했지만, 막상 선생님 앞에서 연주하니 실수가 잦았다. 암보했다고 자랑도 했는데 아예 악보를 까먹어서 멈추기도 했다(그것도 한 번도 까먹지 않은 부분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나니 만날 때마다 어색한 느낌이 들어 더 긴장하는걸까?
여러 조언을 듣고 마지막으로 다시 칠 때는 템포를 좀 더 여유롭게 설정했다. 아까보다 더 느린 것 같다는 선생님 말씀에 아휴, 틀리지 않으려고요! 라고 말씀드렸다(이탈리아 협주곡 1악장은 도입부가 마지막 장에서 반복되는 형태라, 처음에 빨리 쳐놓고 중간에 느려지만 마지막에 엄청 티가 나게 되어 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다.
-혹시 이 악장의 빠르기를 아세요?
-따로 템포 표기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맞아요. 그렇지만 보통은 알레그로(Allegro) 정도의 템포로 연주해요. 알레그로의 이탈리아어 의미를 혹시 아세요?
-빠르게요?
-아뇨 원래 의미…(둘 다 웃음). 알레그로에는 ‘기쁜, 경쾌한, 쾌활한’이라는 의미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틀리는 거 겁내지 말고 경쾌한 느낌으로 연주하셨으면 좋겠어요.
하기야 그렇다. 아무런 의무나 부담이 없는 취미인 나의 피아노야말로 틀려도 상관없는, 순수하게 기쁨으로 가득찬 행위 아닌가.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한 지는 모르겠지만, 피아노를 칠 때도 그러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훨씬 그러한 방향으로 연주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가볍고 경쾌하게, 알프스 남부의 따뜻한 햇살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게 칠 수 있는 것이겠지. 피아노 수업을 들으며 가장 크게 배우는 부분이 연주할 때의 마음가짐인 것 같다.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지난 3달 동안 이어진 일곱 번의 이탈리아 협주곡 1악장 수업이 끝났다. 다음에는 무슨 곡을 연습하게 될까? 지금은 다시 알프스를 넘어 북쪽으로 올라가 브람스의 인터메조 Op. 118-2를 칠까 싶다. 해가 가장 짧을 때, 추위가 마음 구석구석으로 파고드는 이 계절이 아니라면 언제 이 곡을 더 깊게 만나보겠는가.
수업에서 들은 내용들.
(1) 1마디 시작 부분의 왼손 : 트릴의 방향을 생각하세요. F 코드의 네 음 중 베이스음을 강조할 것인지, 탑 노트를 강조할 것인지.
(2) 논 레가토Non legato는 어느 정도 길이인가요? : 한 멜로디를 한 손가락으로 친다고 가정했을 때의 느낌을 생각해 보세요.
(3) 69~72마디 왼손 : 새끼손가락 터치를(즉, 손가락이 건반과 닿는 면적을) 조절해보세요.
(4) 112~118마디 오른손 트릴 연습 : 트릴 연주할 때 손을 건반 가까이로 가져오세요. 처음에는 오른손 트릴 없이 왼손만, 다음에는 음 당 8분음표로 느린 트릴, 다음에는 16분음표로, 점점 더 빠르게 연습해 보세요.
(5) 121~123마디 오른손 손가락.
(6) 전체적으로 : 손을 건반 멀리 두고 있다 쾅 때리지 마세요. 탑 노트의 멜로디를 살리면서 연주하세요(이것은 지난 16번의 수업에서도 마찬가지거니와 앞으로도 한 50년은 들어야 할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