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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방통 Jun 28. 2020

공룡 사냥꾼

진귀한 몽골의 공룡 화석 도굴에 얽힌 엉망진창 이야기

커버에 쓰인 이미지는 데이노케이루스의 새끼를 낚아채는 타르보사우루스. Damir G. Martin 일러스트.


아무래도 과학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까, 회사에 주기적으로 홍보를 위한 과학책 신간이 배달되고는 합니다. 일주일이면 열댓 권이 금방 쌓이죠. 이 신간의 홍수 속에서 한 두 권을 겨우 읽을까 말까지만, <공룡 사냥꾼>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공룡이라뇨! 사냥꾼이라뇨!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공룡 화석을 채집하는 화석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라뇨!


처음 들어보는 분이 많으실 것 같은데, '화석 사냥꾼'은 화석을 캐내어 판매하는 사람들입니다. <공룡 사냥꾼>의 저자 페이지 윌리엄스에 따르면 이들은 고생물학자, 수집가와 함께 화석을 탐내는 인간들 중 하나로, 세 부류는 화석에 대한 애정과 돈이라는 관계로 이어져 있지요. 고생물학자는 연구를 위해서, 수집가는 비어있는 자신의 진열장을 채우기 위해 화석을 필요로 합니다. 화석 사냥꾼은 이런 사람들에게 화석을 판매하는 것이죠.

이게 돈이 되냐고요? 세상에, 당연하죠. 지금까지 나온 가장 비싼 화석은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인 ‘수(Sue)’로, 1997년 경매에서 830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현재 가격으로는 약 162억 원 정도예요.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화석을 발굴하고 다듬어 판매하는 산업과 시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화석을 둘러싼 다양한 다툼이 벌어집니다. 어떤 고생물학자는 화석 사냥꾼이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는 환경을 파괴하는 도굴꾼이라 주장합니다. 오래전에 사라진 생물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은 화석이 없으면 연구 자체가 불가능한데, 전문 지식이 없는 화석 사냥꾼이 수집가에게 화석을 팔아버리면 귀중한 지식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것이죠. 화석 사냥꾼은 ‘세상에는 화석이 너무 많고, 대부분은 인간이 발견하기도 전에 풍화되어 없어진다. 우리는 그런 화석을 발굴할 뿐’이라 항변합니다. 이 주장은 둘 다 부분적으로 맞아서 논쟁이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화석 사냥은 다양한 행위자의 이해가 얽힌 복잡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 복잡한 관계가 상징적으로 터진 것이 <공룡 사냥꾼>의 저자 페이지 윌리엄스가 다루는 ‘몽골 타르보사우루스 도굴’ 사건입니다. 2012년, 뉴욕 경매장에 티라노사우루스의 약간 작은 친척 육식 공룡인 타르보사우루스의 골격이 나와서 105만 달러에 판매됩니다. 그런데 이 뼈는 사실 뉴욕 경매에 나올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타르보사우루스는 몽골에서만 발견되는 화석인데, 몽골은 화석의 반출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었거든요. ¿¿뭐야 이게? ¿어케된겨? 

이 경매를 수상하게 여긴 몽골 고생물학자가 이 사실을 공론화하면서 문제가 커집니다. <공룡 사냥꾼>은 이 화석을 찾아 다듬어 출품한 화석 사냥꾼 에릭 프로코피의 삶을 따라 걸으며,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다룹니다. 누가 어떻게 이 화석을 몽골에서 캐냈을까요? 이걸 미국으로는 어떻게 가지고 온 걸까요? (세관에는 아마 ‘오래된 돌덩어리’ 정도로 썼겠죠?) 이 화석은 팔릴까요? 아니면 고향인 몽골로 다시 돌아가게 될까요?


이 화석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백악기의 몽골을 누비던 타르보사우루스는 물론, 아시아의 소국에서 화석을 강탈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이야기, 소련 붕괴 이후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몽골 고생물학자들이 공룡 도굴을 눈감아줄 수밖에 없던 사연, 공룡 화석이 몽골의 정치적 상징으로 쓰이게 되는 상황, 타르보사우루스를 거래하려 한 화석 사냥꾼이 어떤 판결을 받는지. 저자는 10년 가까운 조사 끝에, 고생물학에서 과학사, 정치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냅니다. 그 글솜씨를 보면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닙니다. 책의 풍성한 디테일은 어쩔 때는 너무 자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몽골을 설명하기 위해 유목 민족과 칭기즈칸부터 출발하는 식이죠(이 내용은 몽골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미국 독자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여하튼 <공룡 사냥꾼>은 공룡 화석 도굴에 얽힌 방대한 내용을 잘 묶어낸 책입니다. 공룡과 고생물학  내용을 직접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공룡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학계 너머 과학의 작동 방식 또한 잘 보여주고 있지요. 최근 비슷한 시기 나온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와 함께 공룡에 관련된 훌륭한 책이 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 쥐라기 공원 시리즈를 보신 적 있는 분 <

>>오래전 멸종한 생물의 유해를 보면 가슴이 뛰는 분<<

>>>그렇습니다 공룡을 좋아하는 모든 분께 추천합니다<<<

또한 이 책은 과학이 정치와 경제 등 사회와 가지는 상호작용과, 서구의 제국주의적 수탈이 식민지 과학계에 어떤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도 잘 보여줍니다. 연구서는 아니지만, 과학사나 STS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께도 재미있게 읽힐 것 같아요.


함께 읽어볼 만한 책 :

위 독서 감상문을 한 줄로 줄이면 아마 “공룡 화석 판매는 장난이 아니다” 정도로 요약될 겁니다. 진짜 장난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냐면 까딱 잘못하면 FBI가 여러분을 잡으러 오고 미국에서 제일 큰 재판에 휘말리게 되며 검사가 징역 350년을 때릴 정도거든요. 이 사건은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세계에서 제일 비싸게 팔린 티라노사우루스 ‘수’에 얽힌 이야기 중 일부입니다. ‘수’의 일화는 여러 권의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는 시카고 필드 박물관(수를 구입한 그 박물관입니다)의 큐레이터 랜스 그란데가 쓴 <큐레이터>라는 책의 한 챕터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나온 정말 멋진 책이니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책일 거예요. 커버에 수의 골격이 커다랗게 박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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