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류에 대한 매혹적인 헌사
"어떤 곰팡이는 인간으로 치자면 성별과 비슷한 교배형이 수천 가지나 있다.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는 곰팡이는 치마버섯인데, 2만 3000가지 이상의 교배형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개체가 거의 모든 다른 개체에 대해 성적화합성을 가지고 있다. ...곰팡이의 자기정체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항상 2진법적인 세계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다. 곰팡이의 자아는 점진적으로 타자에게 물들어갈 수 있다."
멀린 셸드레이크, 김은영 역,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76쪽.
과학책 편집자분들과 함께 책모임을 하고 있다고 내가 얘기했던가? 3주에 한 권 정도 읽는 모임에 초대받아 먹고 마시고 떠든 게 어느덧 1년. 코로나로 한동안 모임이 중단되기도 했고 요즘은 줌으로만 만나고 있지만, 스케쥴러를 확인해보니 14권이나 읽었다.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는 이 모임에서 만난 가장 좋은 책 중 하나다. 좋은 책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책, 실망스러운 책까지 다양한 반응을 접했지만 이 책만큼은 읽어온 모두가 만장일치로 감탄했던 것 같다. 첫인상부터 강렬했는데, 모임에서 읽을 책을 찾던 도중 저자 셸린 멀드레이크가 자신의 책으로 키운 버섯을 직접 먹는 북트레일러 영상을 보게 된 것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나올 것 같은 젊은 남자의 이상한 섭식 과정을 보는 기분이란. 곰팡이에 이 정도 진심인 사람이 쓴 글이라면 읽어도 되겠다 싶었다.
책의 원제는 <Entagled Life>인데, 균류가 수많은 서로 다른 생물(식물, 박테리아, 다른 균류)들과 얽혀 복잡한 생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마트에서 버섯을 사봤다면, 거대한 뿌리에서 자라난 수많은 느타리버섯을 손질해 본 적이 있다면 이 버섯을 어디부터 한 마리라고 불러야 했을지 궁금했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한 마리의 균류일까? 균류의 세계에서는 어디까지가 '나'고, 어디까지가 '너'일까? 하나의 균류가 뿜어낸 수많은 균사가 식물 뿌리와 뒤얽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면 그들은 하나의 생명이라 할 수 있을까?
하나의 생물 개체를 어디까지로 정의하고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이것이 저자가 균류를 통하여 가장 혁신적으로 되짚어보는 통념이다. 너와 나의 구분이 모호한 생물의 세계. 지능의 범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류처럼 거대한 뇌(혹은 중앙집중형 신경절)가 없는데 곰팡이는 어떻게 선택과 판단을 할까? 셸린 멀드레이크는 자기와 비자기, 젠더, 의식, 지능 등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생명의 정의를 균류를 통해 새롭게 바라본다. 어쩌면 균류의 입장에서 인간은 그 어떤 외계인보다도 이상한 존재이리라.
여기에 더하여, 저자의 넓은 식견과 다채로운 문체가 책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토머스 쿤부터 코르포트킨, 히에로니무스 보스, 톨킨, 조지프 니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레퍼런스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지적 식견이 탁월해서 도저히 데뷔작으로 보이지 않는다. 글쓰기 방식도 보통의 과학 교양서와는 사뭇 달라 철학과 문학, 과학의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저자가 송로버섯 채취자와 그의 채취견과 함께하는 챕터의 마지막 문단.
"(채취견) 단테는 연신 킁킁거리며 땅을 팠지만,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노력을 보상해줄 수 없으니 안됐군요." 르페브르가 쪼그리고 앉아 단테를 어루만져주며 말했다. "하지만 이 녀석에게 트러플보다 더 값진 보상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트러플은 언제나 최고의 보상입니다. 단테에게 신은, 땅속에 존재합니다." 르페브르는 나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76쪽.
신은 땅속에 존재한다니, 어떻게 이런 문장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기존의 딱딱한 과학교양서 서술에 질린 분.
당장 내일까지 새로운 내용으로 기사 발제를 해야 하는 과학잡지 기자.
자아 구분의 한계에 대해 질문하는,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아더 마인즈>, <면역에 대하여>, 린 마굴리스의 저서를 재밌게 읽었던 분이라면 분명 좋아하실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