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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준 Jan 14. 2017

모두를 위한 금융효율성(1)

시민투 연재 6

친구 사이에 돈거래하면 돈 잃고 친구 잃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일정한 수입이 없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얼마의 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때는 딱 잘라 거절하든지, 경우에 따라서는 되돌려 받을 생각 없이 주는 것이 좋다. 그만큼 친구 사이 돈거래는 불편하다. 반면에 금융기관에서는 돈거래가 거리낌 없이 이루어진다. 무인격적인 거래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페르디난드 퇴니에스의 표현대로 하자면 금융기관은 분명히 게젤샤프트(상호간 이익계산이 관계 형성의 기본적 동기가 되는 사회를 뜻함. 혈연, 우애, 공동체 등 본질적인 의지로 연결되는 게마인샤프트와 대조)의 특질이 강하다. 게젤샤프트 사회라서 편한 면이 있다.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 이 두 개념은 이론에서는 분리될지라도 현실 사회에서는 공존한다. 퇴니에스는 전통적인 게마인샤프트는 지나갔지만 그 공동체 가치는 게젤샤프트에서 다른 형태의 규율로 이어질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시민들의 참여와 저항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역사적인 교훈이다. 산업화 시대 군국주의로 독일을 이끌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유럽 최초 광범위한 사회복지 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은 페르디난드 퇴니에스나 막스 베버 같이 사회주의자 탄압법에 저항한 비판적 지성들과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에서 이제 금융화 시대로 옮겨 왔다. 금융은 주거와 자동차 구입, 교육과 의료, 보험과 투자 등 모든 가계 활동으로 영역을 넓혔다. 소비자 금융은 확대되었고 글로벌하게 연결되었다. 미연방준비국의 금리 결정이 다음날 태평양 건너 주택담보대출금리에 영향을 준다. 경제 전체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 왔다. 2009년 이후 금융부문의 부가 비금융 부문보다 2배 빠르게 성장했다.[1] 금융 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경제 전반에 단기적이고 무책임한 사고방식과 주주이익 우선의 기업경영, 금융부문과 슈퍼 대기업 경영진의 정치적인 파워 확대 및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다. 타임지 컬럼리스트 라나 포루하(Rana Foroohar)는그녀의 최근 저서 Makers and Takers에서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주범으로 금융화(Financialization)를 지목했다.[2] 그녀의 책 제목처럼 금융이 가치를 만들지 않고 빼앗아 가는 존재(taker)가 되었다면 이에 대항하는 합리적 시민정신도 어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근대 산업화를 제국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한 것처럼.   

 

금융자본주의는 거대 금융기관들이 만들고 가계는 소비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시민들은 금융을 소비하면서도 금융의 중심지로부터 밀려났다. 하지만, 금융상품은 금융기관이 만들지라도 금융자본주의는 시민이 만들어 가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핀테크와 크라우드펀딩은 지난 한 세기 동안 굳어진 금융의 작동방식을 바꿀 희망을 보여준다. 금융의 생산과 배분에 시민이 참여하는 문이 열리고 있다. 규제의 벽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국내도 (아직도 비상식적인 규제로 생사의 기로에 선 핀테크 벤처들이 많지만) 예외일 수 없다. 금융의 혁신이 단지 디지털 기술혁신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혁신으로 발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동기로 금융의 효율성과 사회적 혁신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앞으로 두세 편 나누어 써 보려고 한다.




금융의 본질적인 기능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출이란 자금을 일시적으로 빌려주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금융기관이 효율적이라면 그 대출 상품의 사용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어야 한다. 예일대학교 로버트 쉴러 교수는 “건전한 채무는 사회복지 측면에서 유익한 효과를 낳도록 대부자에 의해 의도된 채무 (salubrious debt is designed by the lender to have a salutary effect in terms of social welfare)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대출조건에 대출자에게 건전한 인센티브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는 건전한 채무의 예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셜플랜을 통해 많은 유럽 국가에 보조금과 함께 제공한 대부를 들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독일에 무거운 배상금을 요구했는데, 이런 요구를 충족하려면 독일은 자본 대부분을 외국으로 유출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전쟁 중 빌려준 돈을 돌려받고 미국 상품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독일을 포함한 유럽이 안정과 번영을 찾는 게 이로웠다고 판단한 것이다.[3] 물론 마셜플랜이 미국 입장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과 유럽 모두에게 매우 성공적이었다. 마셜플랜의 정신을 가계 금융에 적용할 수 있다. 건전한 채무란 채무자와 그 가정의 삶 나아가 사회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건전한 대출이 있는 반면 가정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악성 대출이 있다. 쉴러 교수는 독성 있는 채무의 예로 2007년 금융위기 이전 몇 년 동안 저소득 가정에 과도하게 제공된 모기지 대출을 들었다. 이때 대출은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한 정보와 판단 없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수백만 가정의 주택이 압류되어 쫓겨났다. 저소득 가정에 대한 대출이라도 금융기관이 상품 판매이익에만 매몰되면 나쁜 금융이 될 수 있다. 자유롭게 한 계약이라고 하며 부실 대출의 책임을 대출자에게 지우는 것은 피상적인 판단이다. 건전한 대출상품을 팔 책임은 금융기관에게 있다. 환자를치료하되 약물 오용을 하지 않을 책임이 의사에게 있는 것과 같다. 정보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영역에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2014년 영국의 금융규제기관인 Financial Conduct Authority는 소비자금융회사 웡가에게  330,000 명에 대한 대출 잔액 220 million 파운드(그 당시 환율 기준으로 4천억 원에 상당함)를 손실 처리하도록 명령했다. 30일 이상 연체한 이들은 채무이행을 면제받았고, 30일 미만 연체된 사람들은 이자 부담 없이 4개월 동안 나누어 갚도록 채무조정을 받았다. 그 배경에는 웡가가 OFT (Office of Fair Trading)의‘Irresponsible lending’ 가이드라인을 위반하여 무모한 대출과 불법적 추심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경쟁이 충분한 상태에서도 상품 가격이 왜곡되고 판매가 불완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은 항상 있다. 인디애나 퍼듀대학교 김재수 경제학 교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하이듀와 코제기 교수의 이론적 연구를 언급하며, 완전경쟁적인 대출시장이라고 해도 소비자들의 과다 대출을 막을 수 없으므로 약탈적 대출 문제는 소비자 보호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 보호 정책은 시장에 대한 개입이라기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자기 통제를 위한 행동 장치 (commitment device)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했다.[4] 이런 행동경제학적인 분석은 절박한 상태에 있는 소비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금융서비스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통찰력을 준다.


금융업은 돈을 유통시킨다. 하지만 일반 유통업이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같이 변화해나간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혁신이 뒤처져 있다.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 토마 필리옹(Thomas Philippon) 교수는 금융산업이 효율성은 백여 년 전 John Pierpont Morgan시대 이래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5] 금융산업은 엄청난 규모로 커졌다. 맨해튼이나 홍콩 등 대도시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것은 대부분 금융기관의 빌딩들이다. 금융업 종사자는 일반적으로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것은 금융이 자본을 더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금융의 성장과 혁신이 있었다면 주로 금융부문 내부 거래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필리옹 교수의 분석대로 금융의 본질적인 기능 즉 소비자와 사회에 대하여 생산한 가치를 기준으로 금융의 효율성을 계산해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금융은 원래 그 자체로 목표가 될 수 없고 시민과 사회의 경제와 삶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목적에 부합할 때만 금융은 효율적이다. 반대로 양극화와 온갖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청년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자원이 낭비되는 사회라면 금융업은 이미 비효율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 철혈재상은 금융자본주의의 패권을 쥐고 있는지 모르겠다. 금융을 혁신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은 그 철혈재상이라도 사회를 위한 진보적인 정책을 수용하게 만드는 일이다.


      

[1] Global Wealth Report, Credit Suisse Group

[2] Makers and Takers, RanaForoohar, 2016

[3] (Robert J. Schiller, Finance and the GoodSociety P158; 로버트 쉴러, 새로운 금융시대, 노지양, 조윤정 옮김. P268-9)

[4] 99%를 위한 경제학, 김재수, P.84-85

[5] 토마 필리옹 교수는 금융 자산의 생산비용이 지난 130년 동안 1.5-2% 로 거의 변화 없었고, 최근 40년 동안에는 오히려 상승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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