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느끼한데 어째요
20대에 읽었다면 더 재밌었을 산문집. 작가님의 청춘 에피로 로코 하나 찍어줬음 좋겠다.
제목부터 "안.느.끼.한 산문집"
느끼하지말자!고 다짐하며 조절했다고 하시는데요. 책 전체가 느끼했다.
어쩔 수 없다. 타고 나길 느끼한 사람은 어쩔 수 없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쉬는 시간에 친구가 한참 얘기중인데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그 친구에게 집중해서 듣고 있단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난 지금 널 보고 있어"라고 했는데
그걸 들은 주변의 경악한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얜 너무 리마리오같아!"
(당시 더듬이 댄스로 느끼 캐릭터의 획을 그었던 역사 속 그분 맞다)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초딩 여자애한테 리마리오는 너무 했자나..
암튼 그때부터 좀 덜 느끼하려고, 그리고 오글거린다는 말이 생긴 이후에는 덜 오글거리려고 노력했지만...
30살까지도 여전히 나는,
연인에게 장문의 사랑 편지를 써야 속이 풀리고
술 없는 자리에서 내 친구해줘서 고맙다며 울컥하고
몇번씩 본 영화여도 꼭 같은 구간에서 울기를 반복하는
회사 워크샵에서 낭만을 쫒고 싶다는 말을 내뱉고야 마는,
그런 느끼한 사람이다!
그래서 작가님과 결이 맞았고 ^*^ 반나절만에 후루룩 읽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SNL>, <놀라운 토요일> 등등의 작가셨던데 그럼에도 지독히 가난한 청춘이셨던게 어이없었다. 대체 연예 생태계는 어떻게 되는거야?! 최최상위만 독식하는 그런 구조인가
암튼 그 못된 세계에 화도 나고 저런 삶을 몰랐다는데 안도하는 한편, 약간 후회하기도 했다.
청춘이라고 꼭 아플 필요는 없지만 나는 내 20대벌이에 비해 풍요로운 것만 누린 것 같아서.
과소비하면서도 주변이 다 그러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첫 회사 인턴 급여가 200이 안됐는데 점심마다 외식하고 비싼 커피 사들고 수다떨고, 돈 좀 모이면 놀러갈 궁리하고.
그때 그러지 말고 아득바득 살았더라면?
차라리 돈을 못벌어도 하고 싶은 일에 몰입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챕터에 있었을 것 같아 아쉬웠다.
그리고 작가님이 부럽기도 했다 20대 후반에도 꿈을 쫒고 소개팅 전날에 두근거려 한다는게 가능한거구나.
요즘 나는 '이제 30이니까' 한결 더 어른처럼 굴려고 애쓰고 있다.
매년 어떻게 살아야 현실적인가 고민하고 , 옷도 우아해보이는 것만 사고, 연애 상대도 진중히 고르고.
(그럼에도 실패하는 나...)
근데 이게 진짜 나인가? 내 취향이 진짜 이랬나? 한번 뒤돌아볼 수 있었다.
5년 뒤에 보면 30도 엄청 어려보일텐데. 너무 조바심 내고 있었네.
덕분에 허우적거리던 30의 늪에서 좀 벗어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주의할 것.
이 책을 읽으면 술이 무척 당긴다.
눈에 뻔히 보이는 멜로물을 틀어두고 싸구려 와인을 홀짝이며 울고 싶은 그런 느낌이다.
(근데 작가님은 책에서 와인 마신 적 없구요?) 암튼 그래서 오늘 혼술 한번 해봐? 딱기다려 하다가
무가당 땅콩버터에 피치우롱차나 한잔 했다는 이야기~ 이게 나다운거지 뭐.
마지막으로, 감출 수 없는 느끼함은 사랑 가득하고 순박한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
작가님의 가족 에피소드를 보며 자꾸 우리 부모님이 겹쳐보여서 피식피식 웃었다
여태까지는 느끼한게 부끄러웠는데 이젠 그냥 사랑 받은 흔적이라 생각하고 당당해져야겠음.
(사실 그러지 못하겠지만 결심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