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로 기억될까
퇴사까지 D-109
"나가세요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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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리다. 연차나 직위에 비해. 그래서인지 조금이라도 날 아끼는 선배들은 모두 따로 조언을 해줬다. 그 시급도는 다르지만.. 결국은 나가라는 이야기. 어딜 가나 내부가 시끄러운 건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기대보다 더 좋고 더 배울 수 있는 곳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회사에 대한 애정은 접어두고, 부여받은 역할로 취할 수 있는 것만 얻고 하루빨리 나가라고.
정말 위로가 되는 건, 나가보면 더 좋은 곳이 많을 거란 이야기. 첫 회사 때도 그랬다. 사람들이 너~무 좋고 일도 익숙하니까, 나가기 전까지 많이 울었다. 근데 막상 나오고 보니 밖이 더 좋았다!
지금도 우리 회사 사람들도 너~무 좋고 일도 만족스러운데 나가는 게 맞나 주저하고 있었단 걸 깨달으니 한결 편해졌다. 나는 어디서 뭘 하든 그걸 사랑하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용기가 생겼다.
다만 다른 것들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사랑하는 팀원들과 서비스.. 아무리 분리하고 '나'만 생각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4개월의 유예기간을 잡았다. "바보야! 4개월 뒤면 핵심 인력들은 다 나가고 퇴직금도 제대로 안 줄 수도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사실 그래서 불안하다...) 어쨌거나 사랑하는 회사인데 이성과 논리로만 볼 수는 없다.
나름 책임을 지고.. 이직하더라도 그 끝에 기념비적인걸 해내고 싶다. 이 회사에서의 나에게 쓰는 묘비명 같은 거랄까.
나중에도 "그분,, 이거 하나는 끝내주게 해냈잖아"로 기억되고 싶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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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 묘비명 프로젝트를 정하는데 고민 사항
1. 서비스 지표를 가장 크게 올릴 것 : 결국은 모두 팀과 서비스를 위한 일. KPI를 끌어올려야 한다
2. 적당한 규모일 것 : 4개월 내에 끝을 내려면 협업자 규모나 배포 예정일이 2개월짜리 여야 함
3. 주목도가 있을 것 : 그래도 명색이 마케터인데 기발해서 다들 오? 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4. 외부 변수가 적을 것 : 누군가의 퇴사 시 고꾸러질만한 거나, 큰 결정이 필요한 건 후순위로 미루자
5. 직접 성과가 측정될 것 : 내 성과라는 걸 어필할 수 있는, 서비스 테스트 등과 독립적인 지표
6. 다른 데서도 써먹을 수 있을 것 : 이직할 회사가 어디든 응용할 만한 인사이트를 뽑을 게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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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추리고 추린 프로젝트 방향성
1. 서비스의 포지션을 바꾼다 : 커머스에서 메타엔진으로 탈바꿈
2. 커머스 이상의 USP를 정의한다 : 가격 말고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할 구매 혜택을 만든다
3. 유입 채널의 판도를 바꾼다 : 지금은 기존 온라인 고객이 70%. 하지만 진짜 시장의 잠재 고객은 오프라인거래가 훨씬 많다. 오프라인을 쉽게 온라인으로 넘길 수 있는 진짜 혁신을 해본다.
4. 트래픽을 늘려 전환수를 올린다 : 마케팅의 꽃은 트래픽. 고객들이 재밌어하고 참여할 만한 이벤트를 한다
네... 일단 모두 규모부터 글렀고요? 막상 리스트업을 해보니 하고 싶은 피날레들은 모두 6개월짜리다. 4번만 단순 이벤트로 할 수 있을 듯. 아 좀 더 다닐까? 퇴직금 1년 더 채우고 끝낼까? 이래서 남는 것에 미련이 생기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