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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충만한삶 Dec 07. 2019

나는 몇개의 가면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다를까? 아마도 조금은...

내가 보는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모습이 일치하는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자신만의 필터를 통해 걸러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나에 대해 공통적으로 느끼는 면이 있다면 그건 나의 (외적인)모습이라고   있을테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는 잘은 모르겠다. 많이 들어본 말들은 착한  같다. 이해심이 많은  같다 등등이 있지만 내가 보는 나자신은 정말 이해심이 많고 착한가? 대답은 글쎄...


굳이 말하자면 못된 사람은 아닌  같다. 어느정도 책임감도 있고 남에게 피해 주는  싫어하기에 남들에게 해를 끼친적도 없다.(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ㅋ) 그렇다고 남들을  이해해주고 아낌없이 나눠주는 기버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적당히 이기적인 그냥 평범한 기버와 테이커의 중간이다.


아마도 나를 착하다고 말한 사람들은 내가 굳이 입밖으로 싫다거나 불편한 기색을 표현하지 않기에 그럴 것이다. 그건 착하다기 보다 자존감이 부족한데서 기인한 결과이다. 나의 감정을 스스로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만한 탓이다.


자존감의 여섯기둥을 보면 받아들임이 반드시 좋아함이나 기쁨, 용서를 뜻하는  아니라고 한다. 나의 잘못도 실수도 그대로 인정하는게 중요하다. 실수를 수용함으로써 실수에서 교훈을 배우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간의 나는 실수나 잘못을 하면 받아들이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회피하려고 했고,  결과 실수들이 반복됐다. 나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그당시에는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나의 감정도 알아차리거나 수용하지 못했기에 착하다는 타이틀을 곁가지로 얻었던 것이다.


지금도  길은 멀지만, 받아들일  있다는 거기에서 바로 발전하기로 결심할  있다는 너새니얼브랜든 박사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아마도 남이 보는 착하기만  박지영은 더이상 없을 수도 있지만 대신에 나는 나로 살아갈 자유와 자신감을 얻게  것이다.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간극은 그로인해  좁혀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내가 쓰고 있던 가면들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겠지?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자존감의 여섯기둥 오늘의 문장

자기수용은 어떤 감정이나 행동도 기꺼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건 나의 표현이야.  내가 좋아하거나 감탄할 만한 것이라고   없지만, 그래도 이건 나의 표현이야. 적어도 그것이 일어난 순간에는 말이야.”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자체로 치유력이 있다.


감정을 억눌러온 오랜 시간들이 떠오른다. 아니 사실은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지금도 훈련해야 하는 일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좋든 싫든 수용하는데서 나의 발전이 시작될  있다는  분명히 안다. 앞으로 더욱 나와 친해져야겠다. 그리고 아이들의 불편한 감정들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해줘야겠다. 아이들도 그렇게 자존감을 키워가도록 내가 바뀌어야  한다.


#한달자존감 #자존감의 여섯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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