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도약을 앞둔 우리들이 생각해봐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
신뢰는 서로간의 약속이고 믿음이다. 나는 당신을 신뢰한다는 말은 당신이 내 뒤통수를 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는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고 있든 신뢰로 이루어진 거대한 사회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쓰는 돈만 해도 그렇다. 사실 알고보면 종이조각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렇지만 누구하나 그 종이조각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사 재무팀에서 일했을 때 나는 매일 수십억을 입금하고 출금하곤 했는데 그 실체를 본적은 한번도 없다. 단지 숫자만 오고갔을 뿐이지만 모두가 돈이 오간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렇듯이 신뢰가 바탕이 된 제도와 시스템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우리는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신뢰는 인간의 역사를 볼 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고 한다. 우리는 현재 지역적 신뢰(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지역공동체 안에서의 신뢰)를 지나 제도적 신뢰(신뢰가 계약과 법정과 상표 형태로 작용, 조직화된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한일종의 중개인 신뢰)를 거쳐 분산적 신뢰(개인들 사이에 수평으로 오가고 네트워크와 플랫폼과 시스템을 통해 가능한 신뢰)의 입구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의 이동(혹은 혁명)은 우리의 삶을 예전과는 180도 다른 삶으로 이끌 것이다.
[신뢰이동]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은 어린시절 도리스라는 유모와 생활했다. 도리스는 레이첼의 엄마가 잡지를 통해 구인광고를 내고 면접을 통해 그리고 추천인들로부터 평을 듣고 나서 선택한 유모였다. 아이를 맡길만한 신뢰할만한 사람을 찾는데 여성잡지와 불확실한 이용자들의 추천, 그리고 직관을 따라 선택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리스는 꽤 괜찮은 유모이긴 했으나 위험한 범죄자로 드러났다. 현재라면 이러한 오류를 줄일 수 있을까? 이제는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신뢰의 형태인 '어번시터'를 통해서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베이비시터를 구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와 그 연결을 통해서 베이비시터를 고용한 경험자들의 평가를 들을 수 있고, 그것이 쌓이고 공유되면서 신뢰가 더욱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분산적 신뢰의 한 형태이다.
우리가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페이스북을 통해 알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직접 연결된 친구든 친구의 친구든 학교 동문이든 직장 동료든 당신은 내가 아는 누구를 아는가? 한 집단과 상황에서 쌓인 신뢰는 다른 사람에게 이동하고 확산될 수 있다. [신뢰이동 P.112]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성공은 또 어떠한가? 처음 이러한 형태의 사업 얘기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차에 올라타고 또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지?였다. 때마침 에어비앤비를 예약한 사람이 성범죄에 노출됐다는 기사도 뜨던 시기여서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도 에어비앤비는 더욱 성장했고 사실은 여행시에 나도 즐겨 이용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리고 또 나는 왜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선택을 하게 됐을까? 신뢰이동이라는 책에서는 에어비앤비는 친숙함을 활용해 크게 성공했다고 이야기 한다.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에 가보면 첫화면은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장소를 검색할 수 있게 해놓았다. 처음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곳을 먼저 검색해보고, 가까운 곳을 검색함으로써 집근처의 다른 집을 쉽게 빌릴 수 있음을 인지하고 완전히 다른 목적지를 검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대상이지만 이상하게 친숙해 보이는 대상도 신뢰하는데 바로 이를 이용한 것이다.
나의 경우, 내가 사는 곳을 먼저 검색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바로 목적지를 검색하고 원하는 조건을 설정한 후 제일 우선으로 보았던 것은 바로 다른 이용자들의 평가이다. 별점이 높을 수록, 호스트의 응답시간이 빠를 수록 슈퍼호스트가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곳이 슈퍼호스트가 운영하는 곳이라면 나는 거의 백프로 그곳을 예약할 것이다. 이 역시 경험자들의 평가가 쌓여 이루어진 분산적 신뢰이다. 나역시 대중의 지혜를 이용해서 거의 의심없이 빠르게 신뢰하고 예약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실패한적은 아직까지 한번도 없다.)
그런데 그런 신뢰는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가? 나는 이용자들의 평점을 신뢰했으나 만약 어떤 사고가 일어난다면 누가 책임을 지게 될까?에어비앤비는 그걸 책임을 질 의무가 있을까? 사실 에어비앤비도 우버도 충격적인 범죄사건들이 여럿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별 고민없이 우버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고 있다.
어떻게보면 우리는 신뢰하는 기능을 알고리즘에 아웃소싱했고, 이미 편의에 익숙해져서 알고리즘에 대한 신뢰를 깨기 어려워진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우버가 져야 할 책임이 시작과 끝이 어디냐는 것이다. [신뢰이동 P.159]
이제 우리는 에어비앤비와 같은 플랫폼에서 신뢰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신뢰는 플랫폼에도 있고 그 공동체 사람들 사이에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뢰가 깨어졌을 때 책임을 지는 쪽은 어디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지도자들은 이러한 플랫폼의 붕괴를 막기 위해 책임지고 행해야 할 부분이 커졌고,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뢰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상은 바로 인공지능(AI)다. 생각하는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지적활동을 할 만큼 똑똑해지면 인공지능은 인공일반지능(Artificail General Intelligence, AGI)이 된다. 이러한 단계는 인간의 훈련과 지시를 떠나 스스로 결정하고 학습하고 행동할 수 있는 단계인데 이러한 대상을 인간은 신뢰할 수 있을까?
인간은 외모와 소리가 비슷할 수록 그 대상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로봇의 능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인간미가 있는 로봇을 사람들은 더 신뢰하고 선호했다. 로봇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신뢰인데(인간이 신뢰하지 않으면 로봇을 이용할 일이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개발자들은 로봇을 인간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중이다. 그러나 로봇의 상용화는 기술보다는 윤리문제가 더 큰 걸림돌이다. 윤리적인 로봇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인간은 과연 윤리적으로 행동하긴 하는가? 시간에 맞춰 약을 주는 단순한 로봇마저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약을 먹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는 약이라면 로봇은 강제로라도 약을 먹여야 할까?
내가 기대하고 있는 신기술 중 하나인 자율주행차만 해도 골치아픈 윤리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내가 타고 있는 차가 그대로 가면 다른 사람을 칠 것 같고, 방향을 바꾸면 내가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자율주행차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을 입력해놓아야 한다면 어느 쪽으로 프로그래밍 할 것인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이타적인 선택을 하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차량에는 자신 대신 타인을 구하기 위한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구결과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결국은 인공지능이든 로봇이든 신뢰성있고 적절하게 행동하게 만드는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그러나 인공일반지능이 된 기계의 행동에 인간에게 백프로 책임을 부과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할까? 다른 여러 신뢰관계의 미래와 마찬가지로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아마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테고, 그런 혼돈을 거쳐 새로운 신뢰가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너무 멀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신뢰의 이동은 급격하게 발생하고 있다. 신기술은 신뢰의 도약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수평적인 분산적 신뢰의 시대를 도래하게 만들었다. 제도적 신뢰는 무너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신뢰진공의 상태가 된다면 음모론과 근거없는 가짜뉴스들과 속임수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분산적 신뢰가 수평적이라는 장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만큼 산만하고 예측불가능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취약점을 극복하고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은 과제이기도 하다.
기술은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결국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신뢰받을 자격이 있는 상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신중해야 한다. 분산적 신뢰에서는 신뢰휴지trust pause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자동으로 누르고 옆으로 넘기고 공유하고 수용하기 전에 잠시 차분히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정보를 찾기위한 과정을 거치는 사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나만의 소박한 방식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신뢰이동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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