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은 멀리 있지 않다.
유난히 심심한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책 한 권을 읽었다. '산으로 가는 이야기'라는 소설집이었다. 소설집엔 세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있었다. 세 편의 소설 모두 주인공들이 말 그대로 산으로 갔다. 저마다의 이유로 산으로 갔다. 흥미롭고 오묘한 이야기를 몰입해서 읽었다. 덕분에 오전은 그럭저럭 심심함을 달랬다.
점심을 먹고도 심심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도 볼 게 없었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쿠팡 플레이, 왓챠를 모두 뒤져도 보고 싶은 걸 찾지 못했다. 산책이라도 할까 했는데 비가 내렸다. 비를 맞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을 해야 심심함이 사라질까 고민했다. 초등학교 때 했던 플래시 게임을 찾아봤다. 삼겹살 굽기 게임. 탁구 게임. 보글보글. 건물 부수기. 똥 피하기. 초등학교 때 컴퓨터실에서 재밌게 했던 게임을 모조리 찾아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재밌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해야 재밌을까? 오랜만에 느끼는 심심함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유튜브에서 요리 영상을 보았다. 데리야끼 삼겹살 덮밥이었다. 요리를 하면 조금 즐거워질까 싶었다. 집에 있는 재료를 살펴봤다. 삼겹살은 있었고, 마늘과 양파가 필요했다. 아내와 함께 마트에 가서 마늘과 양파를 사왔다. 요리를 시작했다. 삼겹살을 굽고, 돼지 기름에 마늘과 양파를 볶았다. 간장, 고춧가루, 설탕으로 양념을 했다. 재료기 모두 익은 뒤, 흰 밥 위에 올렸다. 간단한 요리에도 주방은 기름 범벅이 되었다. 다행히 삼겹살 덮밥은 맛있었다.
넷플릭스에서 오늘 1위 영화를 봤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딴 짓을 했다. 그때 갑자기 '미니게임천국'이 떠올랐다. 중학생때 2g 폰으로 열심해 했던 모바일 게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색해보았다. 신기하게도 있었다. 다운받아서 바로 시작했다. 익숙한 캐릭터가 나를 반겼다. 기대되었다.
게임 이름은 단순했다. '뚫어뚫어', '달려달려', '폴짝폴짝', '날아날아', '무찔무찔'. 모두 버튼 하나만 누르면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가장 먼저 '뚫어뚫어'를 해보았다. 바닥을 뚫으며 몬스터를 피하는 게임이었다. 그 단순한 게임에 순식간에 집중했다. 심심함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달려달려'는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만 바꾸며 벽에 닿지 않도록 캐릭터를 조종하는 게임이다. 첫 판부터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나도 내 실력에 놀랐다. 마음만 먹으면 밤새 안 죽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샌가 재미없던 영화는 결말로 향해갔다. 중요치 않았다. 내겐 휴대폰 속의 캐릭터를 살리는 게 가장 중요했다. 죽으면 또 하고, 죽으면 또 하고, 죽으면 또 했다. 너무 중독될 것 같아서 잠시 멈추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서 빨리 쓰고, 다시 하고 싶다. 즐거움은 멀리 있지 않다. 오직 버튼 하나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친다. 이제 다시 게임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