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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쓸모있는 가르침

읽고, 쓰기

by 비둘기

아이들은 저마다 재능이 다양하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만들기를 잘하는 아이, 수학을 잘하는 아이, 암기를 잘하는 아이. 컴퓨터를 잘하는 아이. 기계를 잘 다루는 아이. 정리를 잘하는 아이.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선생님마다 개성과 특색이 있다. 경제 교육에 뛰어난 선생님, 체육 수업을 잘하는 선생님, 학급을 게임처럼 잘 이끌어가는 선생님, 컴퓨터 활용 교육을 잘하는 선생님, 미술 지도를 잘하는 선생님.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학생들도 달라진다. 체육을 좋아하는 선생님 반이 체육대회 우승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잘 그리는 선생님 반 학생들은 대체로 그림을 잘 그린다.



매년 3월이 가까워지면 고민한다. 나는 도대체 뭘 잘할 수 있는 선생님일까? 공부는 모든 선생님이 잘한다. 차별성이 없다. 체육도 압도적으로 잘하지 못한다. 요즘 시대에 모르면 살아갈 수 없다는 AI, 코딩도 할 줄 모른다. 워드 작업도 서툴다. 그나마 잘하고, 꾸준히 하는 건 글쓰기다. 그래서 매년 독서와 글쓰기를 중점을 두고 지도한다. 하면서도 생각한다. 코딩언어를 가르치고, 학교 교과서도 점점 디지털 교과서로 바뀌고, 명령만 하면 chat GPT가 글도 다 써주는 이 시대에, 고작 내가 잘하는 건 읽고, 쓰는 것뿐인가?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데, 뜬금없이 어떤 수능 국어 강사의 영상이 떴다. 이 나이에 느닷없이 수능 강사의 영상이라니. 볼 이유가 없었지만, 자극적인 썸네일에 사로잡혔다. ‘수능에서 문학을 없애버리자?’. 제목은 ‘우리는 왜 문학을 해야 하는가?’였다. 처음 보는 국어 강사는 문학을 전공한 듯했다. 그는 칠판에 한 문장을 소개했다.


문학에 대한 경멸과 백수(白手)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져 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 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자기 각성의 몸부림이다. 문학이 없는 시대는 정신이 죽은 시대이다. 문학은 한 민족이 그곳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재확인하는, 언제나 터져 있는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

김윤식‧김현, <한국 문학사>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이 언제 쓰였는지 찾아보았다. 1973년.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쓰인 글이었다. 그때도 문학은 경멸의 대상이었구나. 그래도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구나. 밟혀도, 꺾여도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구나.



말을 타고 이동하던 시절도, 인력거를 끌고 다니던 시절도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감히 예측해본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상상도 못 할 정도의 과학적 발전이 있더라도, 펜과 종이의 존재 가치는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 또는 상상의 세계를 쓰는 사람들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읽고, 쓰는’ 일은 여전히 가르칠 만한 일이다. 내 쓸모가 아직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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