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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by 비둘기
6885724.1.jpg 델리스파이스

델리스파이스를 처음 본 날이 생각난다. 그들은 조용히 등장했다. 기타리스트 김민규는 아주 천천히 기타를 튕겼다. 띵~ 딩. 느릿한 기타연주가 끝난 뒤, 드럼과 베이스가 합세하며 그 유명한 <차우차우>의 기타 리프가 시작되었다. 모든 관객은 동시에 환호했다. 전주가 끝나고 델리스파이스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김민규는 오직 한 소절만 부르고 기타연주에 전념했다. 노래는 관객들의 몫이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제 그 노래는 델리스파이스의 노래가 아니었다. 모두의 노래였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이건 정말 가성비가 좋은 노래구나!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건 오직 두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불렀다. 눈앞의 수많은 관객이 자기 노래를 불러줄 때, 그 기분은 어떨까?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온 우주에서 가장 행복할 것 같다고 느꼈다.



한동안 그 감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만 죽자고 들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 늘 듣던 ‘차우차우’를 예약했다. 내 차례가 되고 마이크를 잡았다. 익숙한 기타 리프가 끝나고 노래를 시작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리고 또다시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그리고 또다시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또다시….

“너의 목소리가 들려.”

무한 반복되는 두 줄의 가사. 처음엔 신나게 부르다가, 슬쩍 친구들의 눈치를 살폈다. 황당해하는 친구들의 표정이 보였다. 화면엔 여전히 같은 가사가 반복되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1절인지, 어디부터가 2절의 시작인지도 알 수 없었다. 조용히 나는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지 않겠다고. 이 노래는 공연장에서 불러야 제맛이다.



그런데 요즘 델리스파이스 소식이 도통 들리질 않는다. 새 앨범도, 공연 소식도 없다. 여전히 내 플레이리스트엔 그들 노래가 가득한데…. 이제 그들의 기타 소리를, 무심하지만 따뜻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아쉽다. 사실 그보다는 내가 그들의 노래를 힘차게 부를 기회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델리스파이스 형님들이여! 아직 힘이 남아있다면, 그때 그 무대가 생각이 난다면 기타 한 번만 튕겨주시길…. 노래는 우리가 다 부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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