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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일 없이 산다

장기하와 얼굴들

by 비둘기

우리 집 현관문 아래엔 동그란 구멍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그곳엔 신문이 꽂혀있었다. 매일 아침 신문을 보며 생각했다. 저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은 얼마나 부지런할까? 수없이 많은 관찰 끝에 신문은 새벽 6시쯤 배달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든 집에 새벽 6시 이전에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 어쩌면 그는 산타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



당시엔 유난히 학생들에게 신문을 권했다. 신문을 자주 읽는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미신이 떠돌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도 매일 신문을 펼쳐보았다. 내가 신문을 보는 루틴은 일정했다. 가장 먼저 TV 편성표를 살핀다. 다음으로 스포츠 뉴스를 정독한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새로 개봉한 영화나 새로 발매한 앨범을 소개해주는 문화면을 본다. 그리곤 가지런히 신문을 덮는다.


그날도 문화면을 보고 있었다.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인디밴드 르네상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당시만 해도 ‘인디밴드’라는 말은 꽤 낯설었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의 밴드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그들을 인디밴드라고 부르진 않았다. 그저 락밴드라고 부를 뿐이었다. 그 작은 기사를 지나치지 않은 건, 기사에 실린 장기하와 얼굴들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들의 비주얼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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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이 덥수룩한 더벅머리 남자가 기타를 메고 있었다. 그 양옆엔 선글라스를 쓴 두 여성이 있었다. 그들 모두 상당히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의도적인 복고풍이라기보단 평소 그들의 스타일처럼 보였다. 그만큼 촌스러움이 잘 어울리는 밴드였다. 기사에서는 장기하를 ‘장교주’, ‘인디계의 서태지’라 불렀다. 인디계의 서태지를 몰라봤다니. 내가 요즘 음악 트렌트를 쫓아가지 못했구나….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야. 너 장기하 알아?”

“아니.”

또다시 물었다.

“야. 너 장기하 알아?”

“아니.”

세 번째 물었다.

“야. 너 장기하 알아?”

“아니.”

이 몸이 물어물어, 골백번 다시 물어도 장기하를 아는 이는 없었다.



처음 들은 장기하 노래는 <싸구려 커피>였다. 반주가 나오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구수하게 첫 소절을 불렀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이게 노래야? 동네 아저씨가 골목에서 흥얼거리는 소리지. 이게 노래야? 옆집 백수 형이 하는 신세 한탄이지. 그런 생각을 할 때쯤 그냥 말하는 건지, 랩을 하는 건지, 타령을 하는 건지, 박자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읊조림이 흘러나왔다.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물 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이게 노래야? 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할 정도로 이런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 그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듣고 또 들으며,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내가 장기하인지 장기하가 난지 모를 정도로 부르다 보니 그의 읊조림을 정확히 따라 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다른 곡.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공연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무표정으로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외치던 장기하가 역시나 무표정인 얼굴로 소리친다. 워어어어어어~. 동시에 장기하와 미미시스터즈는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춤을 춘다. 그 모습을 처음 보고 웃음이 터지지 않는 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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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의 가장 큰 단점은 곡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싱글 앨범엔 단 세 곡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정규 앨범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마침내 그들의 정규 앨범이 나오는 날. 부지런히 학교를 마치고, 학원 수업까지 듣고 나니 이미 밤 9시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학원 차 안에서 그들의 첫 정규 앨범을 들었다. 학원 차를 함께 탄 친구에게 물었다.

“야. 너도 들을래? 장기하와 얼굴들 새로 나온 곡이야.”

“이름이 장기하와 얼굴들이야? 이름 지은 꼴을 보니 가수가 아니라 개그맨이구먼.”

“노래가 재밌긴 해.”

나는 이어폰 하나를 친구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그들의 앨범 이름과 같은 제목의 노래 <별일 없이 산다>를 들었다.



네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그 순간 우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함께 학원 차를 탄 다른 이들이 우릴 이상하게 쳐다봤다. 필사적으로 참았지만, 웃음은 새어 나왔다. 큭큭큭. 꺼이꺼이. 친구는 말했다.

“이거 완전 가수가 아니라 개그맨들이구먼.”

그날 학원 봉고차 속에서 우린 함께 결심했다. 평생 별일 없이 살자고.



고등학생 때, 장기하가 서울대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서울대생’ 타이틀을 붙이고 나니, 그가 뭔가 달라 보였다. 가수가 아니라 개그맨이라고 비웃었던 그의 가사에 뭔가 있지 않을까 고민해보았다. 혹시나 청년 세대를 대변한 것일까? 아니면 사회를 풍자한 가사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결론을 내렸다.

‘역시 우리나라는 서울대를 가야 인정받는구나.’

나는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 그가 서울대생이라고 하니, 왠지 나도 서울대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루는 영어 선생님께서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너, 지금 보니까 약간 장기하 닮았다?”

“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비웃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며 내 롤모델을 닮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리도 기분이 좋지 않을까? 기숙사로 돌아와서 거울을 바라봤다. 내가 진짜 장기하를 닮았나? 한참 동안 바라보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다시 한번 결심했다.

‘이 얼굴로는 반드시 서울대를 가야 할 것 같아.’



서울대는 만만한 목표가 아니었다. 보기 좋게 실패했다. 알고 보니 장기하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씩 사람들에게 알려지더니, 한순간에 <무한도전 가요제>까지 나오는 락스타가 되었다. 수염을 밀고, 살을 빼니 생각보다 잘생겨진 그는 계속해서 실험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넓은 무대에서도 관객을 한순간에 사로잡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몇 년 전 장기하는 로큰롤을 넘어서기 위해 ‘얼굴들’과 결별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발자취에 스스로 만족했다. 더 이상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박수칠 때 떠났다. 홀로서기를 한 장기하는 록을 벗어난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며 음악적 묘기를 부리고 있다. 최근엔 베테랑2의 음악 감독을 맡기도 했다. 늘 장기하는 장기하다운 음악을 했다. 록을 할 때도, 영화 음악을 할 때도, 다양한 실험적인 장르에 도전할 때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예전 ‘장기하와 얼굴들’이 그립다. 풍성한 밴드 사운드 위에 장기하의 읊조림이 얹혀진 그 음악이 생각난다.



내가 죽는 그 날까지

전혀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에 살던 화가의 그림을 보듯

넋을 놓고 기다리고만 있다

<잊혀지지 않네 – 장기하와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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