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스터데이>를 보고
대학교 2학년 때,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 할아버지의 내한 공연 소식이 있었다. 비틀즈를 그다지 좋아한 건 아니었다. 아는 노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Let it be>, <Yesterday>, <Hey jude>, <Ob-La-Di, Ob-La-Da>, 기타 등등. 하지만 당시 밴드 동아리에서 드럼을 쳤던 나는 밴드 동아리 특유의 허세가 있었다. 밴드라면 비틀즈를 들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락의 전설인데. 대학 동기 한 놈도 나를 설득했다.
“야. 너 폴 메카트니 할아버지가 몇 년생인줄 아냐? 42년생이야. 이번에 못 보면 평생 못 봐.”
유혹에 넘어갔다. 티켓 값은 30만 원. 학식을 100번 먹을 수 돈이었다. 한 달 생활비를 락의 전설에게 바치고, 그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안타깝게도 폴 메카트니 할아버지께서 한국 공연 전에 장이 꼬이셨다. 기다리던 공연은 취소되었고, 다시 한 달을 살아갈 수 있는 생활비가 생겼다.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사실상 폴 메카트니를 본 거나 다름없다고.
얼마 전 <예스터데이>라는 영화를 봤다. 전 세계에 갑작스러운 정전이 일어난다. 그 때문에 길을 걷던 무명 가수 잭은 버스에 치인다. 다행히 회복한 잭은 친구들 앞에서 비틀즈의 노래 <Yesterday>를 부른다. 하지만 친구들 누구도 그 노래를 모른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비틀즈의 <Let it be>를 들려준다. 모두가 그 노래를 처음 듣는 반응이다. 누군가 말한다.
“네가 지금까지 만든 노래 중에 제일 좋다.”
잭은 인터넷에 비틀즈를 검색한다. 전혀 나오지 않는다. 세상 모두가 비틀즈를 잊었다. 나만 빼고. 잭은 비틀즈를 마음껏 이용한다.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며 조금씩 유명해진다.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봤다. 내 인생에서 비틀즈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어떨까? 답은 금방 나왔다.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물론 비틀즈 노래 좋다. 나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좋은 노래는 많다. 지금도 끊임없이 나온다. 비틀즈를 사랑한 적도 없고, 비틀즈 노래에 담긴 사연이 있지도 않다. 유일한 추억은 폴 메카트니 아저씨를 보려다가 못 본 게 전부다.
영화 <예스터데이>에서 잭이 비틀즈의 <Yesterday>를 부르자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노래 좋은데? 콜드플레이 ‘픽스 유’ 정도는 아니지만.”
잭은 발끈한다.
“어딜 ‘픽스 유’에 비교해? 이 노랜 위대한 예술이야.”
모두가 비틀즈를 잊은 세상. 다시 비틀즈가 돌아온다면 콜드플레이를 뛰어넘는 밴드가 될까?
잘 모르겠다. 그저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비틀즈의 <yesterday>보다 콜드플레이의 <Fix you>가 더 좋다.
비교도 안될 만큼.
내 인생에서 콜드플레이가 사라진다면? 오아시스가 사라진다면? 뮤즈가 사라진다면? 내가 사랑하던 수많은 밴드가 사라진다면? 역시나 답은 금방 나왔다. 그들이 사라진다면, 내 과거가 송두리째 사라질 것이다. 는 뻥이고. 뭐 별일 있었겠나? 그들의 노래가 없었다면,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노래를 들었겠지. 공연장에 갈 시간에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게임을 했겠지.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그들의 노래와 함께하지 않은 ‘나’는,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매우 높은 확률로 선생님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어떤 평행 세계에는 콜드플레이를 모르는 내가 살고 있을 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는지. 나도 궁금하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나에겐 비틀즈의 음악보다 소중한 음악이 많다.
이 말을 하고 싶어 쓸데없는 말을 많이도 지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