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먼스이어
요즘 <폭삭 속았수다>가 인기다.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폭삭 속았수다> 이야기다. 넷플릭스 첫 화면에도 늘 <폭삭 속았수다>가 나온다. 포스터엔 옛 교복을 입은 아이유와 박보검이 나온다. 무슨 이야기일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들려오는 풍문으로는 굉장히 감동적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늘 볼까 말까 고민하다 다른 영화를 봤다. 결국 마지막 화가 나온 지금도 아직 한 편도 못 보고 있다
https://youtu.be/7nGdpHQ0Uc8?si=iPvC8MPUXoBe77Oy
얼마 전 가요무대에 <폭삭 속았수다>의 주인공 아이유와 박보검이 나왔다. 둘은 무대에서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불렀다. 원래도 좋은 노래였지만, 두 사람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둘은 예쁜 가사를 곱게도 불렀다. <소나기>의 소년 소녀가 떠올랐다.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워 주고파.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
언제쯤 그 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거렸죠.
이 노래를 듣고 나니 <폭삭 속았수다>를 보고 싶은 마음이 1.6배 정도 커졌다.
얼마 전 뉴스에서 시골 초등학교 소식을 봤다. 그 학교는 올해 입학생이 딱 한 명이었다. 유일한 입학생이 궁금해 전교생이 한 교실에 모였다. 그들 모두를 합쳐도 열 명도 되지 않았다. 산골엔 점점 소년, 소녀들이 사라지고 있다.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소년, 소녀들도 풀잎새 따다가 엮거나,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놀진 않는다. 여러 매체를 통해 도시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그곳을 동경하며, 산골을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시대가 바뀌면 산골 소년, 소녀들도 변한다.
그래도 여전히 저 노래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변치 않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산골 소년, 소녀뿐만 아니라 지금의 산골 소년 소녀들도 품고 있는 마음. 산골 소년 소녀뿐만 아니라 농어촌 소년 소녀, 변두리 소년 소녀, 대치동 소년 소녀, 한강 소년 소녀, 신도시 소년 소녀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마음. 지금은 다 커버린 된 과거의 소년, 소녀들도 한 번쯤은 가졌던 마음.
좋아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마음. 아니 절로 누군가가 떠오르는 마음.
‘데이먼스이어’의 노래를 들으면 그 마음이 느껴진다.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오랜 시간을 억압의 세계에서 살았다. 드디어 자유의 세계로 넘어오자,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그중 하나는 음악이었다. 전역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빈털터리였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2옥타브밖에 안 되는 작은 마스터 건반을 샀다. 10만 5천원짜리 마스터 건반은 그냥 누르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노트북에 연결해야 소리가 났다. 노트북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리 맑진 않았다. 그래도 장점이라면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한동안 퇴근 후엔 그 건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드럼도 칠 수 있는 내 소중한 장난감이었다.
나는 그 작은 건반으로 코드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충분히 연습한 뒤, 노래하는 모습을 찍었다. 전 여자친구이자 현 아내에게 그 영상을 보냈다. 그녀가 원하지 않았지만, 그냥 보냈다. 그녀는 늘 아무 말이 없었다. 비난도, 감탄도 없었다. 그래도 늘 묵묵히 내가 보낸 영상을 봐주었다. 그게 좋았던 나는 계속 내 노래하는 모습을 보냈다.
하루는 잘못 누른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서 마음에 드는 노래를 만났다.
내가 손을 잡을게. 너는 힘을 빼도 돼.
첫 문장이 너무 좋았다. 그 말을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검색창에 제목을 검색했다. ‘내가 손을 잡을게. 너는 힘을 빼도 돼’. 참 아름답고도 긴 제목이었다. 알고 보니 제목은 따로 있었다. ‘Yours’였다. 노래를 몇 번 더 듣고, 내 장난감 미니 키보드를 꺼냈다. 이번엔 좀 더 진심을 담아 연습했다.
내가 손을 잡을게. 너는 힘을 빼도 돼.
그저 복사꽃 핀 거릴 걷자.
몇 번의 재촬영 끝에, 마침내 실수 없이 찍은 영상을 보냈다. 영상 아래 답장이 왔다.
‘오. 좋다.’
처음으로 들은 긍정적 반응이었다. 그 순간 나는 데이먼스이어에게 정말 고마웠다.
얼마 전이었다. 차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던 내게 아내가 말했다.
“나 사실 걱정이 있어.”
“뭔데?”
“우리 나중에 아기 생겼는데, 너처럼 음치면 어떡해.”
이젠 알 수 있다. 이건 유머가 아닌 진심이라는 걸. 그래도 고맙다. 진심을 숨기고 ‘오. 좋다.’라고 해주었던 그 때 그순간들이. 상대방을 위해 진실을 살짝 눌러두는 마음. 진실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마음. 이제서야 마침내 웃으며 진실을 털어놓는 마음. 그 마음 또한 참 다정하고, 아름답다.
너는 달을 볼 때 눈이 커졌고
나는 너의 눈에 비친 것을 보네
네가 사랑하는 것이 나와 같아
나는 너를 보네
<josee! - 데이먼스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