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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우리를 찾아줘요

잔나비

by 비둘기

한낮의 뮤직 페스티벌은 쓸쓸하다.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 그 시간부터 공연장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대 앞엔 관객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는 아직 밟히지 않아 푸르른 잔디가 가득하다. 관객이 없더라도 누군가는 노래해야 한다. 그런 무대조차 간절한 밴드들이 너무나 많다.



그날도 그랬다. 2016년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나는 오후 두 시쯤 난지한강공원에 도착했다. 아직 오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며 잔디밭을 방황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중 흐릿한 기타 소리를 들었다. 왠지 마음이 끌려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무대 위에는 이름 모를 밴드가 있었다. 관객은 많지 않았다. 나는 무대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서로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그들의 무대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밴드 잔나비입니다.”

이름 참 특이하다 싶었다. ‘잔나비가 뭐지?’, ‘작은 나비인가?’. 선생을 꿈꾸던 대학생은 잔나비의 뜻조차 몰랐다. 다행히 선생이 된 이 작자. 혹시나 나처럼 ‘잔나비’의 뜻을 모르는 이를 위해 설명한다. 잔나비는 ‘원숭이’를 이르는 말이다. 밴드 ‘잔나비’는 원숭이띠 친구들이 모여 만든 밴드다.



이제 막 첫 곡을 마친 보컬은 몇 안 되는 관객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오늘 같은 날씨에 정말 잘 어울리는 노래 들려드릴게요. 이 곡은 다 같이 떼창 하는 부분이 있어요.”

난생처음 보는 밴드 보컬의 떼창 요구에 얼마 되지 않은 관객들은 당황했다. 이를 눈치챈 듯 보컬은 말을 이어나갔다.

“별거 없어요. 그냥 Fire! 라고 외쳐주시면 돼요.”

그래도 관객이 알 수 없는 표정을 보이자, 그는 한 마디를 보탰다.

“듣다 보면 알아요.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잔나비의 <Fire>라는 곡이 시작되었다.

“But I say FIRE!”

첫 소절을 듣자마자 어디서 따라 불러야 할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신나게 따라불렀다. 곡이 끝나고 뒤를 돌아보니, 관객들이 꽤 많아졌다. 잔나비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마음껏 끼를 펼쳤다. 이어진 그들의 무대를 모두 보고 난 뒤, 나는 생각했다.

‘이 밴드는 곧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알게 될 것이다.’



내 비록 한낱 비천한 인간이지만, 감히 누굴 평가할 자격은 더더욱 없는 비루한 인간이지만, 내 마음속으로 자부하는 능력이 있다. 유명해질 밴드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네가 말하는 유명한 밴드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누군가 ‘어떤 노래 좋아해?’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밴드. ‘그게 누군데?’가 아닌 ‘아, 인디밴드 좋아하구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밴드. 10cm, 데이브레이크, 장기하와 얼굴들, 소란. 이들이 대표적인 내가 찍은 밴드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들이 내 덕에 성공했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날 ‘잔나비’가 그들의 뒤를 이을 것이라 예견했다.



페스티벌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를 돌아보았다. 펑크록 대부 ‘크라잉넛’보다도, 록스타들의 록스타 ‘김창완 밴드’보다도, 공연의 신 ‘이승환’보다도 ‘잔나비’의 공연이 가장 큰 여운이 남았다. 집에서 잔나비의 앨범 수록곡을 하나하나 들었다. 페스티벌에서 들었던 신나는 노래도 좋았지만, 잔나비의 잔잔한 노래도 좋았다. 유튜브에서 잔나비 공연 영상을 모두 찾아보았다. 그들이 직접 본인들의 노래를 소개하는 영상도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 떼창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어서 빨리 그들을 무대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



역시나 내 예측은 틀리는 법이 없다. 잔나비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더 많은 사람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거친 하드록 노래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섬세한 노래도 모두 어울리는 보이스. 음원보다 더 압도적인 라이브 실력과 관객을 단숨에 열광시키는 무대 장악력. 게다가 보컬의 준수한 외모까지. 잔나비는 록스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런 밴드는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사람들은 좋은 건 꽁꽁 숨겨놔도 찾아낸다.


잔나비는 페스티벌이라면 필수로 섭외해야 하는 밴드가 되었다. 음악 방송에도 자주 나와 그들의 노래를 알렸다. 많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그들의 노래를 골랐다. 보컬 최정훈은 예능에도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음악 방송 MC가 되었다. 심지어 최정훈이 부른 <사라진 모든 것들에게>라는 명곡은 내가 쓴 책 제목으로 선택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2024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그들은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헤드라이너가 되었다.



한낮의 썰렁한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해 노래하던 잔나비. 그날 그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그날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4년. 그들은 페스티벌의 주인공이 되었다. 헤드라이너가 된 그들은 무대 위에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감격스러웠다. 넓은 공원을 가득 채운 사람들. 그들은 모두 잔나비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잔니비는 이제 더 이상 “뜰 것 같은 밴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제일가는 록스타였다.

‘거봐. 내가 딱 느낌이 오더라니까.’

나는 그날부터 잔나비의 성공도 내 덕이라고 나홀로 생각하고 있다.



유명해지는 게 밴드가 가야 할 길인지 아직 난 잘 모르겠다. 밴드로서 ‘성공’한다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TV에 자주 나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성공일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이 알려져 음원 차트 1위를 하는 것이 성공일까? 아니면 알아주는 이들이 많지 않더라도, 아무도 박수 치지 않더라도 무대 위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이 성공일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밴드는 유명해지면 좋겠다. 스스로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사랑도 받고, 돈도 많이 벌면 좋겠다. 좋은 집에 살고, 비싼 차도 타면 좋겠다. 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락밴드를 동경하면 좋겠다. 락밴드를 꿈꾸는 아이들도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 아이들이 좋은 음악을 많이많이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좋은 음악이 가득한 세상이 되면 좋겠다. 잔나비를 보며 그런 세상이 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보았다.



Rock will never die

I will die for you

<잔나비, The secret of hard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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