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빈 밴드
한때 홍대에 훌륭한 여성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요조, 한희정, 타루, 레이디제인 등 기타 치며 노래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노래도 좋았다. 사람들은 그녀들을 ‘홍대 여신’이라 불렀다. 여신들의 음악은 인디 씬의 큰 축이 되었다. 이후 새로운 여성 싱어송라이터만 나오면 다들 ‘홍대 여신’이라 불렀다. 흔하면 가치가 없어진다. 너도나도 ‘홍대 여신’이 되다 보니 ‘여신’이라는 칭호가 식상해졌다. ‘홍대가 올림포스냐’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세월이 흐르자, 그 많던 홍대 여신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여전히 활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홍대 여신’이라 부르진 않는다.
밴드는 한때 청춘의 상징이었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은 청춘의 패기를 노래했다.
우리는 크라잉넛 떠돌이 신사
한 많은 팔도강산 유랑해보세!
마음대로 춤을 추며 떠들어보세요.
어차피 우리에겐 내일은 없어.
<서커스 매직 유랑단 – 크라잉넛>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해 보리라 맨땅에 헤딩하리라
난잡한 기름 속에 녹아들어 보리라 사정없이 사정하리라
<청춘 98 – 노브레인>
슈퍼스타K 시즌4 준우승을 했던 밴드 딕펑스는 청춘의 찬란함을 노래했다.
바람이 분다 (네가) 웃는다
햇살은 부서진다.
공기가 달다 (네가) 참 좋다
청춘은 또 빛난다.
반짝여라 젊은 날 반짝여라 내 사랑
<Viva 청춘 – 딕펑스>
밴드 음악은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태도였다. 청춘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청춘을 노래하는 밴드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그 빈자리는 허세와 돈 자랑으로 채워졌다.
https://youtu.be/V2IlM2kGP8M?si=mgazWN55l2Fd0Ype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유다빈 밴드’를 처음 만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그들의 앳된 얼굴이었다. 밴드 음악에 푹 빠진 밴드 동아리 학생들 같았다. 그들은 크라잉넛의 ‘좋지 아니한가’를 불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었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보컬 유다빈은 읊조리듯 노래했다.
나무가 사라져간 산길, 주인 없는 바다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
밤이 오면 싸워왔던 기억
일기 쓸만한 노트와 연필이 생기지 않았나
내 마음대로 그린 세상
이후 조명이 켜지고 유다빈 밴드는 신나게 노래를 이어갔다. 나는 생각했다.
'청춘을 노래하는 홍대 여신이 나타났다.'.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조차도 신나게 리듬을 타며 유다빈 밴드의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무대였다.
이제 유다빈 밴드 자랑 좀 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자랑거리는 보컬 유다빈의 표정이다. 유다빈은 노래에 담긴 감정을 그대로 전한다. 그녀가 신나게 노래 부를 때는 나까지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슬픈 노래를 부를 땐 쓸쓸함이 얼굴에 그대로 배어난다. 가끔은 말보다 표정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녀의 표정은 가사에 담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두 번째 자랑거리는 아름다운 가사다. 어쩌다 보니 나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럽다. 특히나 감정을 글에 잘 녹여내는 이들을 보면 찾아가서 배우고 싶다. 유다빈 밴드의 노래를 들으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심이 전해지는 가사. 조미료 없이 맛을 낸 된장찌개처럼 담백하지만 깊이 있는 가사. 듣다 보면 내 이야기 같은 가사. 그래서 위로를 받고 희망을 품게 되는 가사.
https://youtu.be/Ws8vAUrvci4?si=XwrSxJU0ziMFOZ8L
한 철 마음에 피어난 꽃들이 저물고
하얀 눈은 또 내려오네요
추운 바람에도 우리 외롭지 말아요
<오늘은 잠이 들 거예요 - 유다빈 밴드>
https://youtu.be/_rpjNFcf4Q4?si=kCPewon6E8m1au_d
빛나는 날을 허락해주세요.
시들지 않는 사랑을 주세요.
소리 없는 말을 해주세요.
날 미친 사람이래도 좋아요.
<letter – 유다빈 밴드>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지 찾아가서 배우고 싶다.
세 번째 자랑거리는 빼어난 라이브 실력이다. 유다빈 밴드의 음악은 공연장에서 더욱 빛난다. 그들은 무대를 즐긴다. 멤버 간의 합도 뛰어나고, 관객과 호흡도 자연스럽다. 녹음된 노래를 들을 때도 그들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유다빈 밴드의 공연장을 한 번 찾길 권한다. 그게 어렵다면 그들의 무대 영상이라도 보면 좋겠다. 보고 나면 자연스레 생각할 것이다.
‘이 밴드는 앞으로 더 빛날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자랑거리를 말하려면 끝도 없겠지만, 꾹 참고 여기서 멈춘다. 그 많던 홍대 여신들이 사라지고, 청춘을 노래하는 밴드들이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지금. 유다빈 밴드는 여전히 자신들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들의 노래를 오래도록 듣고 싶다.
https://youtu.be/b4g_Ows9PhA?si=7zAKUCO9jCYk20nD
난 사람들의 모순 속을 찾아 헤매며
단 하나의 꿈을 바라네
상처 이면에 담아둔 작은 마음
난 까만 너의 호수 속을 사랑해
너의 밤 찰나의 꿈을 바라네
가만 비춰본 당신의 한숨 속을 난 보네
<우리의 밤 – 유다빈 밴드>
<비둘기 추천 유다빈 밴드 플레이 리스트>
1. 좋지 아니한가
2. LETTER
3. Daydream – 백일몽
4.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5. 털어버리자
6. 항해
7. 오늘은 잠이 들 거예요
8. 오늘이야
9. 우리의 밤
10. 사포닌 같은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