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꿈>을 읽고
예전에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의 문답을 본 적이 있다. 대화 주제는 냉동인간이었다. 불치병에 걸린 억만장자. 현재 의학 기술로 그는 치료할 수 없다. 억만장자는 생각한다. 300년 후라면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을까? 그는 결심한다. 300년 동안 냉동인간이 되겠다고. 치료법이 개발되면 다시 냉동 상태에서 깨어나 치료를 받고, 삶을 이어가겠다고.
유시민 작가는 이를 비판했다. 삶은 유한해서 의미가 있다. 무작정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욕심이고 어리석은 행위이다.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편이 훨씬 더 품격있다. 정재승 교수는 묻는다.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욕심이 과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어리석은 행위일까요? 그리고 시간을 슬쩍 바꿔 질문한다.
“5년만 냉동인간 상태로 살고 나면 치료법이 개발된다면 그것도 거부하실 겁니까? 그렇다면 1년은요? 3개월은요?”
우린 누구나 죽는다. 시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린 누구나 더 살려고 애쓴다. 역시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며칠을 더 살기 위한 금연은 아름답고, 몇 년을 더 살기 발버둥은 추한가? 다가오는 죽음을 편하게 맞이해야 할 나이는 언제부터일까? 80대? 90대? 시간은 딱 자르기 어렵다.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간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는 미래를 바꾼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기대한다. 우리는 돌아오지 않는 과거를 붙잡기 위해 애쓴다.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일한다. 하지만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흐르지 않는다면? 과거가 결코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현재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변화도 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47p. 인과관계가 없는 이 세계에서 과학자는 속수무책이다. 이들의 예측은 모두 회상이 되고 만다. 이 세계에서 예술가들은 즐겁다. 이들은 예측하지 못한 사건에서, 설명할 수도 없고 돌이켜 생각할 수도 없는 일에서 기쁨을 느낀다.
<아인슈타인의 꿈>은 시간에 대한 30가지 상상력이 담긴 책이다. 시간이 둥근 원이라서 내 일상이 정확하게, 끝없이 되풀이된다면 어떨까? 세상이 한 달 뒤에 끝난다면 우린 어떤 세상을 살까? 세상이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르던 세상이 가끔 오류가 나서 미래가 보인다면 어떨까? 세상 사람들 모두 오직 현재만 기억할 수 있는 세상은 어떨까? 움직이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세계. 높은 곳에 살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세계. 다양한 시간의 세상을 상상해보며 깨달았다. 우리의 삶, 생활 방식, 가치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 ‘시간’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어떤 시간의 세상에 있더라도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현재가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더라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이 훗날 전혀 기억나지 않더라도, 현재를 즐겨야 한다. 모두가 평생동안 죽지 않는 세상이 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단 하루 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해도, 잠시 시간의 흐름이 바뀌어 내 미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운명을 결코 거역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현재를 사는 것뿐이다. 오직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