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당연하게 여기며 불운만을 원망하진 않았던가

신도 많이 억울하셨겠다..

by 비둘기


언제 끝나나 싶던 6번의 항암 치료도 끝이 났다. 6차 항암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던 날, 처음으로 아내 없이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여의도 거리는 지도 없이 다닐 만큼 익숙해졌다. 여의도 맛집도 이곳의 직장인들 못지않게 잘 알게 되었다.

‘이번 치료가 마지막이라면 이곳도 다시 추억의 장소가 되겠지.’

아직 못 가본 맛집도 있었지만, 아쉽진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아직 퇴근을 하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거실을 지나는데, 벽에 귀여운 현수막이 걸려있다.

‘퇴원을 축하합니다. 우리 집 가장 비둘기 항암치료 끝!’

안 그래도 모든 치료가 끝나서 기분이 좋았는데, 저 현수막을 보니 주체할 수가 없어져서 침대에 다이빙을 했다. 그대로 1분 동안 일어나지 못했지만, 여전히 기분은 좋았다. 그 기분 그대로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물을 틀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알몸으로 서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동안의 고생이 떠올라서인지,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어서인지, 아내의 현수막이 너무나 고마워서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지막 치료를 마치고, 며칠간 항암 부작용으로 고생했다. 특히나 근육통이 너무 심해서 걷기도 힘들었다. 대부분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4일쯤 지나니 근육통이 서서히 줄어들고, 걸을만한 몸상태가 되었다.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공원엔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조금 걷다 보니 플리마켓이 열려 있었다. 옷, 피규어, 목걸이 등 볼거리가 참 많았다. 우리는 신나게 이리저리 구경했다. 마음에 드는 접시도 하나 사고, 소원을 이뤄주는 팔찌도 하나 샀다. 예쁘기도 하고, 소원도 이뤄주는 팔찌가 겨우 2000원이었다.

이런 가성비 제품이 또 있을까?



반대 편에서는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멋진 옷을 입은 군악대의 공연을 봤다.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밝게 웃으며 연주하는 군악대 병사들이 멋져 보였다. 그들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이상한 아저씨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서 포기하고 카페에 갔다. 그동안 자제하던 커피도 기분 좋게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볍게 산책하려고 나왔다가 반나절을 제대로 즐겼다.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반성해 봤다.

‘행운은 당연하게 여기며 불운만을 원망하진 않았던가?’

‘원인 모를 암’이라는 불운을 맞이했을 때, 너무나 억울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왜 저에게 이런 불행을 주십니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하늘 위로 던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 불운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불운은 내가 잘못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다. 그냥 오는 거다.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고, 당연히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행운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태어나 수많은 행운을 누렸다. 나 같이 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이유도 다 운이 좋아서였다. 늘 실력에 비해 일이 잘 풀렸다. 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제가 뭘 이렇게 잘했습니까?’, ‘왜 저에게 이런 행운을 주십니까?’라고 질문하지 않았다. 감사함도 모른 채 그냥 누렸다. 돌이켜보니 행운의 순간이 불운의 순간보다 훨씬 많았다. 행운엔 감사하지 않고 불운만을 원망하니,

신도 많이 억울하셨겠다.



이제 그 억울함을 조금씩 풀어드리려 한다. 작은 행운에도 감사하고, 불운이 와도 원망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 만이 내 지난날의 죄를 씻을 유일한 방법이자, 암을 물리쳐준 하늘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지 않을까 싶다.



뭐,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냐만은…


2025년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완전관해 되었습니다.
현재는 정기 검진을 받으며 회복 중입니다.
이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 투병기를 남깁니다.
제 투병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작가의 말

어제는 진정으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봄비가 내렸습니다.

비를 핑계로 저는 집에만 콕 박혀 있었네요.

아침에 글을 쓰고, 점심엔 드라마도 보고,

저녁엔 소고기도 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하루였지요.



오늘은 이제 휴일이 끝나고,

진정한 3월이 찾아왔네요.

원래라면 당연히 저도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집에 있으니 많이 어색합니다.



초등학교를 입학 한 이후로,

3월에 학교를 가지 않은 것은

군생활을 제외하면 처음이네요.

이런 낯선 기분도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즐기려고 합니다.



군 시절에

매일 10가지씩 감사한 일을 100일 동안 쓰면

외박을 보내줬습니다.

갇혀 있는 세상 속에서

감사한 일 10가지를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5개 정도는 매일 금방 떠오르더라고요.

5개 정도는 억지로 지어서 채워 넣었지만요.



오랜만에 그 시절을 생각하며

감사한 일을 찾아봐야겠습니다.

10개를 채울 수 있을 진 모르겠네요.

작가님들께서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감사한 일들을

주위 깊게 살펴보는 하루 되시면 좋겠네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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