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낄라는 마실 수 없지만..
4년 전 일이다. 결혼식 3일 전 오른쪽 아랫배가 살짝 아팠다.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결혼식이 며칠 남지 않아 불안해졌다. 인터넷에 내 증상을 검색해 봤다. 온통 나를 겁주는 글 뿐이었다.
‘오른쪽 아랫배가 아픈 건 맹장염일 수 있다’
‘약으로 치료가 되기도 하지만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3일 뒤가 결혼식이었다. 수술을 할 순 없었다. 그냥 참고 버티려고 했다. 병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 읽지 말았어야 할 한 문장을 읽어버렸다.
‘빨리 치료받지 않으면 맹장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맹장이 터진 채로 결혼식을 할 순 없었다. 바로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응급실은 정말 바빴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를 침대에 눕히신 뒤, 주사를 놔주셨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X-ray를 찍었다. 침대로 돌아와서 또 한참을 기다렸다. 그때 바로 옆 침대에서 다리를 다치신 할아버지와 의사 선생님께서 대화를 나누셨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할아버지의 다리를 보시고 염증이 심하다고 하셨다. 내일 수술을 바로 해야 하고, 어쩌면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를 하셨다.
“수술 전까지 담배는 절대 피우시면 안 됩니다.”
잠시 후, 다리를 다치신 할아버지의 보호자 분께서 들어오셨다. 할아버지는 보호자 분을 보자마자 말씀하셨다.
“형, 나 담배 한 개비만 피우고 싶어. 하나는 괜찮지 않을까?”
그 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다리를 잘라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담배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다가왔다.
“피검사랑 X-ray 모두 이상 없습니다. 그냥 가셔도 됩니다.”
“네? 저 피검사 한 적 없는데요?”
“오자마자 주사로 피 뽑았잖아요.”
“아. 그 주사가 피 뽑는 거였구나.”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 더 이상 배가 아프지 않았다. 사람의 몸은 정말로 알 수가 없구나. 하지만 나에겐 더 큰 미스터리가 남아 있었다.
‘다리를 잘라야 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상황에서 생각나는 게 고작 담배라니…’
항암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날, 나 홀로 여의도 유명 순댓국집에 간 적이 있다. 순댓국에 밥을 말다가, 옆자리에 홀로 온 남자분의 식탁에 눈길이 갔다. 그분의 순댓국 옆에는 소주 한 병과 소주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낭만적이었다.
‘나는 이제 평생 저 즐거움은 누리지 못하겠구나..’
못내 슬퍼졌다. 느닷없이 터지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죽음’을 마주한 상황에서 소주 한 병 때문에 눈물을 참다니..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담배 한 개비만 피고 싶다’ 던 할아버지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암에 걸리고 좋아하는 많은 것과 이별했다. 마라톤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고, 해마다 한두 번씩 가던 해외여행도 포기해야 했다. 술은 입에 댈 수도 없었고, 날음식을 포함한 감염 위험이 있는 음식은 모두 피해야 했다. 더운 여름 내내 냉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망고 빙수 모두 먹지 못했다. 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도 바라만 봤고, 달걀도 완전히 익혀 먹어야 했다.
달걀은 반숙이 맛있는데…
생각보다 불행하진 않았다.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모두 제외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은 차고 넘쳤다. 몸에도 좋고 맛에도 좋은 전통 한식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여러 가지 차를 마셨다. 찻잎마다 각자 다른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었다. 냉침한 오미자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못지않게 시원했다. 매일 아침 근처 바다로 산책을 갔다. 빠르게 달리는 대신 느리게 걸었다. 달릴 땐 볼 수 없었던 수많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잔잔한 파도, 먹이를 찾는 새들, 움직이고 있는지 멈춰 섰는지 구분이 안 되는 배들.
바다를 바라보며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주인공들을 생각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마틴’과 ‘루디. 그들의 마지막 소원은 바다를 바라보며 데낄라를 마시는 것이었다. 내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그들에겐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이루고 싶었던 마지막 소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들을 떠올리니 눈앞의 바다가 소중해진다.
데낄라는 마시지 못하더라도, 매일 아침 바다를 볼 수 있는 삶은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달리진 못하더라도, 사뿐사뿐 걸을 수 있는 삶은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마시지 못하더라도, 시원한 오미자차를 마실 수 있는 삶은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회는 못 먹더라도, 생선 구이는 먹을 수 있는 삶은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머리가 아파 책은 못 읽더라도, 누워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삶은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내가 아무 쓸모가 없어졌더라도, 옆을 지켜주는 가족이 있는 삶은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암에 걸렸더라도, 이토록 행복한 삶은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내 삶은,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2025년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완전관해 되었습니다.
현재는 정기 검진을 받으며 회복 중입니다.
이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 투병기를 남깁니다.
제 투병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벌써 3월이 되었습니다.
어느샌가 제 브런치북 연재도 이번 주가 마지막입니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몰입해서 쓰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갔네요.
마지막이 다가오니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연재 기간 동안
하루도 업로드를 하지 않은 날은 없습니다.
계획을 잘 세우지 않고,
세워도 잘 지키지 못하는 저에게는
엄청난 성과입니다.
매일 같이 제 글을 읽어주신
작가님들 덕분입니다.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차마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제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이 다가오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 지도 고민이 되고요.
우선 이번 주 연재를 잘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겠지요.
뒷 일을 그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날씨는 조금 흐립니다.
저는 오늘은 집에서 푹 쉬면서
하루를 보내려고 합니다.
작가님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대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