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점검 결과
버킷림프종은 여섯 번의 항암 치료를 기본으로 한다. 6박 7일 동안 입원해서 항암 치료를 받고, 2주 정도를 집에서 쉰다. 이를 6번 반복한다. 결과가 좋으면 항암 치료는 끝난다. 6번의 항암 치료에도 암이 남아 있다면 추가 치료를 받거나, 새로운 치료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항암제가 암을 전혀 죽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불응’이라고 한다. ‘불응’이 되는 경우 기존 항암제를 계속 사용하는 건 무의미하다. 다른 항암제로 치료를 시도해봐야 한다. 3번의 항암 치료를 마치고, 4차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중간 점검을 한다. 항암제가 암에 잘 반응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즉, 4차 항암 치료는 후반전의 시작이자 전반전의 경기 결과를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전반전에서 내가 잘 싸웠길, 후반전은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압도적 승리를 이뤄냈길 바랐다. 혹시나 전반전에서 내가 지고 있더라도 절망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전반전에서 못 이겼어도 후반전이 있다. 후반전에서도 못 이긴다면 연장전에서 이기면 된다.
절대로 지는 일은 없을 거다.
4차 항암 치료를 받으러 입원하는 날, 밤 11시쯤 CT를 찍었다. 다음날 오전 8시엔 암세포의 크기와 위치를 볼 수 있는 PET-CT를 찍었다. 찍고 나서 간호사님께 여쭤봤다.
“혹시 오늘 찍은 사진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사진 나오면 병동에 계신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실 거예요.”
그 시간 이후부턴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유튜브를 보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속은 온통 기도로 가득 찼다.
‘암이 완전히 사라지게 해 주세요.’라고 했다가, ‘처음보다 줄어들기만 해도 좋습니다.’라고 바꿔봤다가, ‘이번이 아니어도 좋으니 제발 낫게만 해주세요.’로 마무리했다.
PET-CT 사진을 찍은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 병동 교수님께서 찾아오셨다.
“아까 PET-CT 찍은 것 보여드리고 설명해 드리려고 왔어요. 잠시 밖으로 나와주시겠어요?”
의사 선생님을 따라갔다. 심장 소리가 드럼 소리처럼 들렸다. 교수님께서는 모니터에 두 사진을 띄워놓고 말씀하셨다.
“이게 지난번 찍은 사진이에요. 목 쪽에 까만 것들이 암이고요. 오른쪽은 오늘 찍은 사진이에요. 까만 부분이 없죠? 치료가 굉장히 잘 되고 있어요.”
확실히 까만 부분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약간의 거뭇거뭇한 점들이 여전히 있었다. 실망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교수님께 물었다.
“그럼 이제 이 정도만 남은 건가요?”
“이 부분은 원래 사진에서 조금 까맣게 나오는 부위예요. 암은 아닐 가능성이 커요. 정확한 판독은 영상의학과에서 2~3일쯤 뒤에 나올 텐데, 저희가 볼 땐 암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아요. 이 사진 휴대폰으로 찍으셔서 가족분들께도 보여드리세요.
바로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모두가 기뻐했다. 아직 정확한 결과는 아니라지만, 치료가 잘 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희망적이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주말 내내 결과가 궁금했다. 드디어 월요일이 되었다. 교수님 회진 때 결과를 여쭤봤다.
“혹시 결과 나왔나요?”
“치료 잘 됐어요. 판독 결과는 안 나왔는데, 나오면 알려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수요일, 퇴원 전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누워서 고민하는데 병동 교수님께서 내 병실 커튼을 조심스레 열었다.
“판독 결과가 알려드려려고요. 비둘기님 완전관해 판정 나왔어요.”
완전관해는 암 치료 후 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즉,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바라던 최고의 결과를 듣고 나니,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누워서 멍하니 병실 천장을 바라봤다.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기뻐서 운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드디어 기쁨의 눈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고, 힘을 주신 많은 분들께도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드렸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숨기려 샤워실로 들어갔다.
사실 4차 항암은 평소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동안의 치료가 몸에 서서히 부담을 주었나 보다. 몸에서 약 냄새가 나는 느낌이 들고 속이 울렁거렸다. 잘만 먹던 병원 밥이 냄새만 맡아도 역했다. 처음으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책을 읽는 것조차 힘들었다. 대부분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전역을 기다리는 말년 병장처럼 그저 빨리 시간이 흘러가기만 바랐다. 완전관해 판정을 받자, 그동안의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
‘몸이 나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구나.’
가만 보면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두 번의 치료가 남아 있고, 몸은 항암 치료로 점점 더 지쳐가고 있었다. 남은 치료도 지금처럼 고통스러울 게 뻔했다. 어쩌면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또한 완전관해는 완치가 아니다. 이 상태로 5년 동안 암이 재발하지 않아야 완치 판정을 받는다. 암이 재발하신 할아버지를 내 눈앞에서 본 게 2주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온갖 절망과 불행조차도 희망 앞에선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내 몸에 더 이상 암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속엔 희망이 자리 잡았다. 남은 항암 치료조차 감사하게 느껴졌다. 혹시나 남아 있을 작은놈들까지 죽여주는 저 액체가 얼마나 고맙던지. 가족들과 친구들이 축하한다며 맛있는 음식을 들고 면회를 왔다. 울렁거림 때문에 밥을 전혀 먹지 못했는데, 신기하게도 면회 땐 음식이 잘만 들어갔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자취를 감추고, 치료가 끝나면 회복해 나갈 나의 일상이 떠올랐다. ‘이제 나도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고, 달릴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겠구나. 아내와 함께 예쁜 자식도 낳을 수 있겠구나.’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순간, 절망은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희망이 마음에 자리 잡은 순간 어떤 고통도 두렵지 않았다.
희망은 절망보다 힘이 세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세다.
2025년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완전관해 되었습니다.
현재는 정기 검진을 받으며 회복 중입니다.
이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 투병기를 남깁니다.
제 투병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벌써 금요일입니다.
이번 주가 지나면 2월도 끝이 나고요.
올해도 정말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저에게 작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던 기분입니다.
암에 걸리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보니
한 해가 끝나 있었죠.
한해를 그냥 날려보낸 것 같아서
억울한 기분도 들었는데,
글을 쓰며 그때를 돌아보니,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날들을 보냈네요.
여전히 저는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투입해서
아무도 시키지도 않은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 마자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쓴 순간들이
순식간에 흘러갔던 2026년 1,2월을
그래도 조금은 지켜준 것 같습니다.
새해 인사를 나누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설도 지나고,
3월이 다가왔네요.
작가님들 모두 남은 2월 행복하게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주말동안 푹 쉬고,
3월에 새로운 글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