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할아버지의 소원

꿈은 이루어진다.

by 비둘기

입원실은 4인실 아니면 6인실이다. 작은 병실에서 4명 혹은 6명이 함께 지낸다. 침대에 둘러싸인 커튼 덕에 프라이버스는 확실히 보호된다. 다른 환자 분과 얼굴을 마주할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커튼이 방음 처리까진 되지 않는다. 코 고는 소리, 통화 소리, 간호사 분과 대화하는 소리, 방귀 소리까지 서로 함께 공유한다.



3차 항암을 받을 때였다. 침상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맛있게 먹는 소리가 들렸다. 식사 시간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음식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책을 잠시 덮고, 귀를 기울였다. 라이브가 아닌 녹음된 소리였다. 알고 보니 옆자리 할아버지 휴대폰에서 나오는 먹방 소리였다. '후루룩, 쩝쩝'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더 이상 책을 읽긴 어려웠다. 침대에 누워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분명 노래를 듣고 있는데도 '후루룩, 쩝쩝'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께선 과연 어떤 먹방을 보고 계셨을까..'



다음 날 먹방 할아버지와 간호사분께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오늘도 먹방 보고 계시네요? 오늘 메뉴는 뭐예요?"

"김치찜이요. 엄청 맛있겠쥬?"

"맛있어 보이네요. 와.. 근데 혼자서 엄청나게 먹네요."

"아주 대단헌 사람이에유~"

"옆에 있는 저건 또 뭐래요? 오징어인가?"

"대창이래유. 대창. 엄청 맛있어 보이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유튜브에 '대창 김치찜'을 검색했다.

정말로.. 엄청 맛있어 보였다.



먹방 할아버지께서는 정작 본인 식사는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 식사 때마다 입맛이 없어서 못 먹겠다는 혼잣말을 하셨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면 곧이어 먹방 소리가 들렸다.

'후루룩', '쩝쩝'.



하루는 먹방할아버지의 통화 소리가 커튼 너머로 들려왔다. 할아버지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여성분이 말했다.

"오늘 면회 갈 건데,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뭐 얼굴이나 보면 되지."

"그래도 땡기는 거 있으면 말해. 사가게."

"음.. 뭐. 뜨끈한 잔치국수나 칼국수 같은 거 먹으면 참 좋겠다."

"아.. 근데, 그런 건 포장해 가기가 어려운데. 본죽은 어때?"

"본죽도 좋지. 아 그리고. 올 때 이어폰 좀 하나 가져와라. 내가 그걸 안 챙겨 왔다."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못내 아쉬워 보이는 먹방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다음 날 병원 점심 식사로 잔치국수가 나왔다. 잔치국수를 보자마자 옆자리 먹방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얼마나 기뻐하실지 궁금했다. 커튼을 확 젖혀서

"할아버지. 잔치국수가 나왔어요. 역시 꿈은 이루어지나 봐요!"

라고 외치며 얼싸안고 두 바퀴 정도 돌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서 참았다. 휴대폰에서 나오는 녹음된 먹방 소리가 아닌, 할아버지의 라이브 먹방 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ASMR 마이크를 쓰더라도, 역시 라이브의 현장감은 이길 수 없었다.

'후루룩! 후루룩!!'



식사를 마치신 할아버지께서는 통화를 하셨다.

"오늘 점심에 잔치국수가 나왔어! 아이참 오랜만에 잘 먹었네."

그 만족스러운 목소리에 나도 함께 행복해졌다. 그때 할아버지는 한마디를 보태셨다.

"근데, 어제 가져온 이어폰이 연결이 안 된다. 소리가 안 나!"

하하하...

그 후로 퇴원할 때까지 커튼 너머로 할아버지의 먹방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먹방 할아버지. 덕분에 저도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치료 잘 마치고, 건강하게 가족 곁으로 돌아가셔서 좋아하는 음식 많이 드시고 계시길..



2025년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완전관해 되었습니다.
현재는 정기 검진을 받으며 회복 중입니다.
이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 투병기를 남깁니다.
제 투병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작가의 말

잘 먹는 것은 제가 잘하는 몇 개 없는 일 중 하나입니다.

항암을 하면 입맛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1차 항암 때까진 여전히 변함없이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2차 항암 때부터 저도 식욕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나중엔 식판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때 먹방 할아버지의 노하우가

저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습니다.



병원 침대에서 기력이 없어

영화 보는 것조차 피곤할 때

먹방을 보면서 버텼습니다.

특히 유재석 씨가 라면 먹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은 울렁거림과 식욕 부진은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음식이 탐나서

조절하는 중입니다.



혹시나 입맛이 없으신 작가님들이 계시다면

먹방을 강력 추천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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