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키지섬

목조교회, 키지섬!

by 두왓유완트

러시아를 여행하는 내내 나침반처럼 작용한 건 여행안내서 Lonely Planet이었다. 그 책 속 사진 한 장—키지섬의 목조성당—이 내 여행의 방향을 결정해 버렸다. 언젠가는 꼭,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번 길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가 함께했다. 우리 회사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는 러시아 전공자라 언어에도 능숙했지만, 나처럼 이곳저곳 여행을 해보지는 않았었다. 나는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고, 그는 그런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 결국 “나도 꼭 목조성당을 보고 싶다”라며 동행을 결정했다.


러시아라는 대륙은 시간의 감각마저 다르게 만든다. 이곳에서 ‘가깝다’는 말은 다섯 시간쯤 기차를 타는 거리를 뜻했다. 그렇게 우리는 밤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설렘을 품고, 마침내 키렐리아 공화국에 발을 디뎠다.

기차에서 내린다고 바로 목조성당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가량 더 가야만 성당이 있는 섬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배 시간을 놓쳐버렸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그 덕분에 선착장 근처를 천천히 걸으며 구경할 수 있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동상들과 소박한 러시아인들의 주거지를 스치듯 바라보며, 이곳 사람들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기분이 들었다.

Lonely Planet에서 처음 본 목조성당은 그저 웅장하고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섬에 도착해 마주한 성당은 수리 중이었다. 의외였지만, 마치 하늘 위에 살짝 떠 있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성당이 특별한 이유는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나무만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세월을 버텨낸 나무들이 엮여 거대한 성당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다.

밤새 달려와 마주한 목조성당. 그 순간만큼은 사진기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러시아의 성당이라 하면 반짝이는 금빛 onion dome이 떠오르지만, 이곳은 달랐다. 화려함 대신 나무가 전하는 따뜻한 결이 있었다. 낯설지만 신선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온갖 각도에서 셔터를 눌러대며 성당의 모습을 마음껏 담아낸 뒤,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에 마주한 건 섬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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