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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Sep 12. 2016

이승훈 시집, 너라는 햇빛

中 당신은 그동안






당신은 그동안

너무 무겁게 살았지

이젠 가볍게 살아야 해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사람을 사랑하는 건

순진하게 되는 것

아름답게 되는 것

향기롭게 되는 것

고통보다 환희

분노보다 용서

절망보다 희망

복잡한 건 단순하게

당신은 쉰이 넘었지만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실수도 많았지만

머리도 세었지만

당신 머리엔 새가 날아와

놀아야 해


봄이 한창일 때

꽃이 한창일 때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낸

당신은 그때를 잊어야 해

오늘은 화창한 날

오늘은 여름이 오는 날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여름이 오는 날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시간은 많지 않아

공부할 시간도

술 마실 시간도

좋은 사람과 만날 시간도

그러니까 순진하게

아름답게

아름답게

무엇보다 아름답게

살아야 해




-

예전에도 이 시집을 빌렸었다. 이승훈 시인 특유의 문체 이건 시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게 시라는 단어야. 이 단어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겠지. 근데 그게 중요한가. 아 잠와. 스웨터 끈이 풀렸네. 이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아 젊게 살고 싶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퍼즐 같은 문장들 때문에 흐름이 툭툭 끊기고, 이게 시인가. 이런 것 쯤은 나도 쓸 수 있겠는데. 신문보다도 건조하고 의미없는 단어들은 가을 바람처럼 나를 졸리게 했고 눈이 슬몃슬몃 감겼다.


그러다가 문득, 어째서일까. 모든 개연성을 살해 해버리고 자신만이 독보적인 개연성으로 남으려고 하는 단어, 문득.

정말 모르겠다.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왜 꺼내들었는지. 따분하고 틀에 박힌 학교 생활에 이골이나 새로운 문학, 예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기대였을까. 아니면 그냥 날씨가 좋아서 였을까.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간 것은 아니고 그냥 도서관에 있다가 그랬다. 문득 서가로 가서 책을 꺼내 학교 안에 있는 호수 벤치로 들고 나왔다. 커피 한 잔에 쿠키도 몇 개 집어들고.


졸리지 않았다. 몰입하고 감동하였다.

시에는 흐름이 없다. 장면만 있을 뿐이다. 눈을 감고 떠오르는 어떤 장면들, 그것은 보이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장면들, 그게 이승훈 시인이 말하는 실재, reality, 코끼리이자 비누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퍼즐 몇 조각으로 그 장면의 빈틈을 채우고 다시 눈을 뜨며 아, 내가 생각보다 아름다운 곳에 있었구나 실감한다.

중력을 거스르는 분수를 보며 그 고지를 올라 반짝이는 보석들, 영롱한 보석들은 아른거렸다가 다시 사라지며 다시 눈을 감고 나의 마음에 속에도 솟아오르는 어떤 것들, 타오르는 어떤 것들의 무지개를 그려본다.



나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저 분수 알알이 부서지는 그늘 아래라면 너무도 아늑하고 아름다울 것 같다. 그 속에서 당신의 젖은 머리칼을 만질 수 있을까. 서늘한 피부를 느끼며 너도 나도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뒤섞일 수는 없을까. 또는 내가 당신에게 하나의 춤사위, 영롱한 보석으로 맺힐 수 없을까.

라는 생각도 하고. 


나를 조이고 가두는 공허의 낱말들, 최진영 작가가 말했듯 신이 우리를 빚을 때 장난이었는지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찰흙덩어리에 괜히 검지 손가락을 바로 세워 꾹 눌러보고 싶은 것 처럼 신도 우리에게 어떤 구멍 하나를 뚫어놔서, 그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고, 인간이기에 그 속에 무엇인가를 꾸역꾸역 채워보려고 하지만 무의미한 행위, 생각들(그 구멍은 그저 배수구일 뿐이기에, 그것을 채운다는 것은..) 그것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는 것, 그것을 다시 끄집어 내어

생각해보기도 했다.


집중. 자유라는 것은 집중인 것 같아. 자유라는 것은 해탈이고 무상이고 무상은 집중을 하면서 할 수 있다. 무상이라는 것은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단 하나의 생각만 있는 게 아닐까. 무상이라는 단 하나의 생각. 아니면

분수에 관한 단 하나의 생각

진동학에 관한 단 하나의 생각

거동학 과제에 대한 하나의 생각, 갑자기 진로를 생각할 게 아니라

그러다가 진로를 생각하는 단 하나의 생각

술, 쾌락, 유희를 느끼는 단 하나의 감각.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시집의 뒷편에 보면 이 시집의 해설이 있다. 이승훈 시인의 고민, 나와 너의 관계, 절대 타자의 정체성, 객체로서의 <나-나>의 관계, 존재하지도 않는 언어,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해체주의

는 잘 모르겠고


나는 자유를 느꼈다. 젊음을 느끼고 청춘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나를 잠시나마 느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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