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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Nov 15. 2016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진정한 행복을 아는 자가 도대체 존재했던가?




오, 신이시여, 폐하께서는 고통받기 위해 태어나신 겁니다.

우리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행복이 진정 무엇인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군요.




어렸을 적, 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쓸 때가 문득 생각난다. 처음에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언급하고 중간에 줄거리, 마지막으로 느낀점. 이렇게 구성해야 독후감을 썼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는 뭐 책을 읽고 싶어져서, 선생님의 추천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는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제목을 보고 꽂혔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엔 책 이야기를 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그 첫 만남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우연한 만남 또는 문득 떠오르는 제목들. 친구들에게 여자친구를 소개 해줄 때도,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 첫 만남이 궁금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로 화두를 던지곤 하지. 우리의 사랑, 당신과의 관계, 부모 자식들의 인연도 그 시작은 뚜렷한 색채와 질감의 유화로 마음 속에 걸려있다.

나는 이 책을 올 여름 계절학기로 신청한 서양문명의 이해 수업 때 접했다. 간단히 배운 내용을 되짚어보면, 먼저 고대 그리스 최초의 대서사시인 호메로스의 '리야드' '오딧세이'가 기원 전 8세기에 쓰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트로이 목마 신화도 이 책에 언급된 내용이고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해나갔으며 그 중심에는 신이 있었다. 말 그대로 신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후 6-7세기부터서정시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 부터 점점 문학 속에 인간의 감정을 녹여내기 시작한다. 매일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기도를 해도 잘 들어주지 않고, 놀고 먹기만 하는 신을 보며 인간은 그들의 삶을 되돌아본다. '신들은 저렇게 죽지도 않고 행복하게 잘 사는데, 왜 우리의 삶은 이토록 고달프고 힘이들까..'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 헤시오도스의 '노동의 나날'이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삶,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고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 후로 무수한 희곡작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작품들은 여러 극장에서 시연되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에 한 명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되었다.

소포클레스는 이 작품을 왜 썼을까. 사실 오이디푸스 설화는 기원전 10세기부터 계속 구전되어 왔고 여러 작가들에 의하여 작품화 되기도 하였다. 그 작가가 누구든 간에 이러한 비극이 그들에게 왜 필요했을까. 헤시오도스의 작품을 통해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와 대조되는 신들을 보며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삶은 잦은 전쟁과 폭압 정치로 더욱 피폐해져갔고 희망은 끝이 안보이는 기저를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그들이 환호할 수 있는,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들과 비교되는 신이라는 존재가, 불행하면 된다.
또는 신과 필적할만한 권세와 명예를 지니고 있는 왕이 불행하다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대대로 이어지는 인간의 세대여, 
그대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대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그대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한다. 
이 지구 위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사라져 버릴 환영이나 환상, 영상이나 꿈이 아닌, 행복을,
 진정한 행복을 아는 자가 도대체 존재했던가?

기원전 6세기의 그가, 대대로 이어지는 인간의 세대인 나에게 전하는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다. 사라져 버릴 환영이나 환상, 영상이나 꿈이 아닌, 행복을, 나는 진정으로 아는가.

이러한 질문은 하나의 끈과 같다. 나를 꼭두각시처럼 메달고 있는 몇 안되는 끈들 중 하나이다. 대학교에 입학한 스물한살, 그 때부터 나의 존재, 행복, 외로움, 고통, 사랑, 관계 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해 왔었고 아, 나는 이 책을 통해 마치 사유의 기원을 확인한 것 같았고 기원전 6세기에 쏜 화살이 역사를 뚫고 나의 발목에 드디어 꽂혀버린 것만 같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소통이랄까.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중세 봉건 사회를 지나 지금 이 시대까지 인류를 관통하는 하나의 치명적인 화살, 아직도 전 인류의 아킬레스건을 하나로 꿰어버린 그 화살의 이름은, 비극. 비극이라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은 역사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말 그대로 순간이지 않았나. 평화라는 것은 그저 불행을 잠시 잊어버린 순간일 뿐이고 사랑이나 쾌락과 같은 찰나적인 것이다. 인생을 고해라고 하잖아. 지옥같은 세상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거나 갖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이다. 그래서. 유럽 사회에 그렇게 종교라는 것이 깊이 뿌리를 내린 모양이다. 특히 1000년 동안 비극으로 일관하였던 중세시대가 그렇지 않았나. 삶이 비극적일수록 절대자를 찾기 마련이고 앞으로도 비극이라는 토양 아래 문명은 같은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
나는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는가.
나 또한 삶은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당신과의 만남은 첫 만남의 기쁨보다 헤어지는 순간의 슬픔이 더 크고,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렇지 못한 시간이 더 길며, 이를 알았더라면 시작도 아니했을 사랑이란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기며, 존재하지 않아야만 존재함을 깨달으며, 행복은 옆에 있는 줄 알면서도 잘 보이지 않아 찾아 다녀야 하지만, 불행은 그냥 옆에 있고 잘 보인다. 

이 고통의 바다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 내가 좋아하는 이승훈 시인의 시구를 빌리면.


사유는 결국 미친 짓이죠 무슨 영혼, 진리, 본질 따윈 버리세요 잊으세요 망각하세요 세계와 거리를 두지 마세요 영혼 따위에 속지 마세요 진리를 찾지 마세요 그저 사세요 그저 사세요.


이렇게 글을 써 놓고도 비극이고 뭐고 사유? 진리? 개똥이다. 그저 사는 것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저 살아야지.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포클레스의 질문에 대답해본다.
그대는 행복을 아는가.


제가 아는 행복은, 망각 뿐입니다요.
이 또한 비극이 아닐 수가 없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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