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학청년 Nov 23. 2016

프랑수아즈 사강, 한달후 일년후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베르나르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질 거예요.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조제는 대답한다. 
“나도 알아요.




눈을 감고 음미한다. 너와의 첫 만남을 또 어떻게 풀어 나갈지,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 할지 그 시점이 참 애매해. 어느 시점에서 어떤 일련의 사건들과 함께 '아, 이런 책이 있구나' 하며 알게 된 것, 이 아니고 너는 그냥 처음부터 계속 내 마음 속에 있었는데 나는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 그 시초를 굳이 따지자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책의 제목도 모른 채 주인공 이름만 알게 되었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고등학교 때 다른 학교에 아는 여자애가 이 영화를 추천해줬다. 그 친구랑 영화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할까.
제목이 상당히 특이했다.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는 또 어떤 개연성일까. 전혀 가늠이 가지 않는 영화 내용.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올해 초에 재개봉한 조제를 다시 본 이유도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기억나지도 않은 영화를 봤다고 하기가 좀 뭐해서. 그리고 혼자 영화를 보고 싶기도 했고 그러기엔 아주 적절한 제목과 분위기의 영화였기 때문에. 

아 그런데 잠깐, 기억이 안난다. 책은 왜 찾게 되었지. 그 영화를 봤다 한들, 8개월이 지난 후에서야 그 책을 찾게 된 이유는 무엇이지. 햄릿을 읽고 있었는데 말이야. 결국 동기(motivation)의 동기(motivation)는 문득(coincidence)으로 귀결되는 것인가. 무진기행, 무정, 달과 6펜스 등 읽고 싶은 책을 분더리스트에 적어 놓고 더 채워놓고 싶었는지 문득, 영화가 생각났고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생각이 났고 그 소설을 찾아보니 제목이 한달 후 일년 후 였다. 그리고 바로 도서관에서 빌렸다. 그래. 이렇게 너를 만났다. 오래 전 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문득 연락을 해보고 싶은 누군가처럼.

소설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남녀 네쌍의 얽히고 섥힌 사랑, 관계를 보여준다.
알랭과 파니, 조제와 자크, 베르나르와 니콜, 베아트리스와 에두아르 또는 졸리오.
알랭과 파니는 50대의 중년 부부로써 위 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게된 사교 모임의 주최자라고 할 수 있다. 에두아르는 알랭의 조카이며 이 모임에서 베아트리스에게 첫 눈에 빠진다. 베아트리스는 성공과 출세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이고 그에 비해 남자들의 관심을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 관계의 장력보다는 그것이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나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인물이다. 결국 출세의 발판을 마련해 줄 능력이 있는 졸리오를 사랑하게 된다. 아니 사랑한다기보다는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베아트리스를 늙은 알랭이 좋아하고 그런 알랭 때문에 늙은 파니는 속상해한다. 이런 파니에게 그녀의 조카 에두아르가 (베아트리스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하소연을 하러 집에 들렸다 동침을 하게 된다.(침대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베르나르는 니콜의 남편이다. 니콜은 뭐랄까, 지조 절개를 지키는 현모양처의 스타일이지만 항상 베르나르의 사랑에 허기져 있고 그 이유는 베르나르가 조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조제는 베르나르를 사랑하지 않고 자크를 사랑한다.
영화에서도 그렇듯, 이 책의 주제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년 후 혹은 두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에요.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 우리는 그 사람을 잊어버릴 것이다. 아니 사랑하지 않는다. 항상 이별 후에는 이렇게 생각해 왔지. 이별의 슬픔은 시간이라는 약이 치료해줄 것이라고. 그말은 역으로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 것들이란 것이다.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져버린다. 형주와 우중이 승찬이한테 이런 질문을 했다. 

너희 지금까지 여자친구 몇 명 만나 봤어? 
그 중에 진짜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야? 
수가 줄었다. 그리고 물었다.
지금도 사랑해?

신기하게도 대답은 각자 달랐다. 그리고 나는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때는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사랑했고 영원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사랑했었고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 할 사랑도 결국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걸까.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사랑이 식는다, 비슷한 표현이겠지. 이 부분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 식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사람의 마음이 상대방을 처음 만난 그 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많이 식는 편은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본 적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상대방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내 사랑이 다하기 전에 상대방의 사랑이 다 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확인되지 않았고 조금 긴 편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익숙함에 너무 쉽게 속아버린 나머지 식어가는 상대방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끊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소홀히 했었다. 아직 내 마음의 유통기한은 알 수 없지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 사랑이 아닌 다른 무언가이다.
그저께 노트북을 백업하다 예전에 연애를 하며 만들었던 100일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동영상을 보기 전 까지는 그 시절의 기억이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었다. 이별을 하면서 그 추억들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생각을 하면 너무 슬프니까. 허나 사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았고 아름다웠으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그리고 고맙다 사실. 그래 고마운 사람이다. 아,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일까. 한 사람을 그렇게 사랑해본 적도 없었고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로 인해 많이 성숙했다. 그래 고마움을 잊고 있었구나. 사랑이라는 것을 너무 하나의 감정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일 뿐이고 그 안엔 여러가지 감정들이 포함되어있다. 설레임, 좋아함, 고마움, 정 같은 것. 그 중 하나가 식더라도 다른 부분은 지속되거나  더 뜨거워지는 것 아닐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소유한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소유하지 못한 것에 욕심을 부리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감정들도 식어가고 잃어가는 것만이 안타까우며 그것 때문에 사랑이 식었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사람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또 그 시절의 그 사람이 그리운 것은 맞다. 그렇다면 그 시절의 그 사람은 지금의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인가 다른 인물인가. 우리는 사랑을 외치지만 사랑을 모른다. 

그러니까 그렇게 너무 쉽게
사랑이 식었다고 하지 말자.






“조제,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조제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매거진의 이전글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