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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Dec 26. 2019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24살은 7시 12분이 아니라 11시 48분이다


유시민 작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다가 답답한 마음에 적어 본다. 사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작가가 인용한 김난도의 인생시계 때문이다. 대학생 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읽다가 꼴도 보기 싫어서 집어 던져버렸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조차 수치스러워서 알라딘에 팔아버렸는데, 누군가 그 책을 사서 읽을 생각을 하니 양심의 가책마저 든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감정이 유시민 아저씨의 글을 통해 발화되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책이다. '~한 책 중의 하나이다'라고 어물쩍 넘기고 싶지 않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내용은 기억도 안 나지만 그것에 질려버린 두 가지 포인트는 아직도 강렬히 남아있다.


1st punch : 작가소개

2nd punch : 인생시계


두 방에 Knock-out 이다. 이런 식으로 청춘을 조롱하는 책에는 전례가 없다.




1st punch :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


진로를 고민하는 무수한 청춘들에게 던지는 무책임한 한 마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직업으로 가져라. 뭐 이런 부류의 이야기들. 그것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소모전일 뿐이다. 얻는 것 없이 피로해질 뿐이니까.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가는 누구인가. 직업은 무엇이고 어떤 경험을 토대로 이처럼 영양가 없는 소리를 한데 모아서 책으로 엮었는가. 무릇 글을 읽다 보면 작가가 궁금해지는 법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게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소비자 행태'라는 주제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중략) 이건 정말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소비자학 박사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행정고시를 세 번 준비하다가 낙방했다. 행정학 박사 학위도 받았지만 그가 출간한 저서나 방송 매체를 보면 대부분 소비자, 소비 트렌드를 다루고 있다. 여러 일을 하는 그의 메인 잡은 '소비자학'일 것으로 판단된다. 소비자학은 소비문화론, 소비자심리의 이해, 소비자와 신상품기획, 글로벌시장과 소비자 등을 공부한다. 김난도 교수는 이러한 과목을 가르치며 이것들이 이끄는 삶을 아주 잘살고 있다. 그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을 썼고 그것은 베스트셀러(Bestseller)가 되었다. 심지어 태국, 대만, 이탈리아, 네덜란드, 브라질, 일본, 베트남 등 세계 각지로 수출되었다. 출판계 한류 바람을 일으켰다고 책 소개에 쓰여있다. 참으로 글로벌하다.


정말 '내 일'이 이끄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자신의 이야기부터 먼저 해줘야 하지 않나. 본인의 역사를 줄줄이 나열할 게 아니라 그 역사가 일어나게 된 배경들 말이다. 고민과 선택과 환경들. 행정고시는 왜 준비했는지, 그것을 준비할 때의 환경은 어땠는지, 낙방했는데 박사 학위는 왜 땄는지. 행정학을 '내 일'이라고 생각했나? 그러다 소비자학 전공으로 넘어간 이유는 왜인지. 아니면 차라리 이승훈 시인처럼 '사유는 결국 미친 짓이죠' 라고 외쳐버리던지. 공감도 안가고 호기심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잘 팔리고 있으니,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영양가 없는 위로라도 청춘들은 필요한 것일까? 근데 위로가 필요한 것은 꼭 청춘뿐만이 아니잖아. 미디어에서 강조하는 청춘의 덕목들 같은 것 때문에 누구보다도 지쳐버린 세대가 되어버렸나. 모르겠다. 김난도 교수님이라면 잘 아실 텐데. 소비자학 박사니까.




2nd punch : 그대의 인생은 몇 시입니까


정말 이 계산법에 속아버릴 텐가. 인생이 24시간이라면 인간의 기대수명이 80세이니, 1살 = 0.3시간으로 계산해서 24살은 오전 7시 12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 이걸 보고 저기 아메리카 사람들은 Bull Shit 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거짓말로 청춘을 현혹하는 작가에게 정이 붙기 어렵다.


이 계산법의 가장 큰 오점, 그것은 바로 수면시간이다. 하루는 24시간이지만 그중 8시간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잠을 자기 때문이다. 다른 시간들은 제외하더라도 수면시간은 하루의 30%로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는 요소이다. 그런데 책 속에서는 24살을 오전 7시 12분으로 계산한다. 7시 12분이면 우리가 잠에서 깨어난지 얼마 안 된 시간, 그제야 정신 차리고 아침을 준비할 시간, 누군가는 아직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24살이 그렇게 느껴지는가. 24살이면 아침밥은 진작 먹었고 학교에 가서 공부 좀 하다가, 아직 점심은 안 먹었는데 3교시쯤 끝나서 배가 출출한 타이밍, 수업에 집중도 안 되고 매점 가고 싶은, 그런 시간에 더 가깝지 않나. 김난도 교수의 공식으로 계산하면 7시 12분은 이제 막 잠에서 깬 7시 12분이 아니다. 25살은, 자정(0시)부터 20분 자고 40분 깨어 있기를 7번 반복한 후의 7시 12분이다. 이것은 위로라기보다는 농락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확한 계산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좀 까다롭다. 하루는 잠을 모조리 다 잔 후에 시작하고 평생은 매일 8시간씩 자는 거니까. 수학적으로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좀 더 현실적으로 이렇게 따져봤다. 80년 동안 우리는 29,200번의 잠을 잔다. 이걸 24시간으로 나눠보자. 수학적으로 따지면, 우리는 2.96초마다 0.98초씩 자고 1.98초씩 깨기를 반복한다. 이 0.98초씩 자는 것을 몰아서 한꺼번에 잤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약 8시간이 된다. 이제 1.98초씩 깨어있는 것을 8,760번(0살부터 24살까지 365 x 24로 8,760번 깼으니까) 했다고 가정하자. 다 합치면 4.8시간이다. 즉, 25살은 8시간 자고 일어나서 4.8시간이 지난 상태인 것이다. 한마디로, 하루를 24시간이 아니라 16시간으로 보면 된다. 11시 취침, 7시 기상이라면 24살은 24/80 x 16 = 4.8이다. 기상 후 4.8시간이 지난 11시 48분이다.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제일 배가 고픈 시간.


나는 차라리 이게 좀 더 현실적인 계산법이라고 본다. 물론 맹점도 있다. 하루는 16시간으로 보고 평생은 80년으로 보면 이 평생에서도 수면 시간을 제외해줘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는 시간으로만 계산하면 평생을 16시간으로 보는 게 싱크로율이 더 높다. 이에 반해, 김난도 교수의 시계는 너무 느리게 간다. 그런 시계로는 지각을 하거나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다. 시계는 정확해야 한다. 차라리 5분, 10분 정도 빠르게 맞춰 놓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정확한 인생시계 공식은 아래와 같다.


7 + (자신의 나이 ÷ 5) = 인생시간

내 나이 서른, 이제 오후 1시다. 배가 부르고 잠이 설설 몰려온다.

그리고 곧 가장 따뜻한, 혹은 뜨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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