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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Jun 23. 2016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쉽게 쓰여진 시, 쉽게 쓰여진 서평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바람이 불어, 윤동주> 中 










 -

쉽게 쓰여진 시를 쉽게 읽어 버렸고 시집 한 권 제대로 붙잡아 본 적 없는 나는 패스트푸드를 먹듯 시를 읽었다.

여러 편의 시를 보고 그 시를 관통하는 작가의 철학, 갈등, 망상, 허무 따위를 느끼며 젖어 들었다가 다시 건저지고, 눈을 지그시 감아 시어를 곱씹어 보는 것, 그것이 쉽지 않게 읽는 것 아닌가. 나는 서시 한 편 책상 위에 걸어 놓고 윤동주의 시를 다 아는 척 했다. 동주 영화 한편 본 것으로 그를 이해한 척 했다.  


이런 내가 부끄러워 최근에 재발매된 윤동주 초판본을 구매했다. 3~4만 원 짜리 전공서적은 1년에 두 번씩 갈아치우면서 내 평생 만 원짜리 시집 한 권 사본 적이 없다. 이런 나를 조롱하듯 시집은 생각보다 읽기 어려웠다. 해석상의 어려움이 아니라 낯선 단어와 한자어, 세로로 쓰인 시구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도서관에 들러 몇 가지 주석이 달린 손때 묻은 해석본을 빌렸고 하루 만에 와르르 읽어버렸다. 붕어방 벤치에 앉아 시 한 편을 읽고 한숨을 쉬고, 바람에 잎사귀를 흔드는 나무를 쳐다보다가 하늘을 보았고, 또 다시 읽고는 휴우 긴 숨을 내뱉었다. 숨 하나하나에 나의 생각을 날려 보냈고 그렇게 비웠고 그렇게 채웠다.     

 

기계공학도로서 국문학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언어수업을 떠올려 보면, 동주의 시는 그 시절의 다른 시들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시대를 분노하고 괴로워하며 목 놓아 울부짖던 저항 시인, 그들이 시대 자체에 저항했다면 동주는 그 시절 속에, 다만 홀로 침전해가는 자기 자신에게 저항했다.

이런 동주의 눈에 맺힌 하늘과 바람과 별은 순수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볼을 어루만져주는 바람, 눈썹을 물들이는 하늘, 그 하늘을 수놓는 별…. 그 어떤 의심이나 기교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그것들을 동경하며, 끊임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자신과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윤동주 시집에 나오는 시어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꾸밈없는 시어 하나하나에 그의 성찰과 진심이 담겨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는, 갈등과 번민 속에서 꽃을 피운 시들은, 하늘과 바람과 별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다.     



-

24세의 윤동주. 그가 살았던 시대, 그 시대에 표출된 시어들과 언어를 보며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나는 한 번이라도 시대를 분노하고 괴로워한 적이 있었는가. 


쉽게 쓰여진 시조차 쓰지 못했고 기계공학과 3학년으로써 윤동주나 (내가 좋아하는)이승훈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서평을 쓰고 있는 도서관, 내 옆자리에서 전공 서적을 펼쳐 놓고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학생들을 보며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며칠 전엔 지도교수님께 상담을 받았다. 나는 좀 더 여러 경험을 쌓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여행도 더 많이 다니고 싶은데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이제 정신 차리고 공부해야지. 영어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야지. 3학년이니까. 26살이잖아.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취업 준비하는데 네가 지금 이럴 때냐고. 게다가 학교에서는 2017년 안에 모든 학기를 마치라며 재촉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불만을 품는 게 시대에 저항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시대 저항이 아니라 부적응이라는 인식을 떼려야 뗄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시대 청년들의 갈등이고 방황일지도 모른다. 동주가 살았던 시절과는 달리, 이게 저항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고 투정부리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만약 누군가가 직접 저항을 하거나 괴로움을 표출하더라도 시대는 그것을 모두 새하얗게 표백시켜 버린다. 지금 시대가 그렇다. 어느 한 소설가는 이러한 우리를 표백세대라고 하더라.      


하지만,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에도 성내어서는 안된다. 이 의심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20대니까, 청춘이니까 더 부대끼고 갈등하고 사랑하고 방황해야지. 그게 한 시대의 청년의 역할 아닌가. 그것이 고독한 홀로서기 일지라도, 부적응일지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자격증을 따느라 아직 게시하지 못한 나의 참회록, 소화가 덜 된 단어들, 죽은 생각들은 칫솔을 목구멍에 집어넣어서라도 토해내야지.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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