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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Aug 14. 2016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3/3)

인간은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coloryourlife #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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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독후감을 세번에 나눠 쓰려고 하는건지 방학숙제를 내준 것도 아닌데 쓰다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며 깊은 생각은 머리에 가득 차고 나는 아틀라스처럼 무거운 대갈통을 어깨에 이고 그 무게로 인해 움직일 수 없고 피로가 쌓이며 이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청하고 꿈을 꾸며 꿈 속에서는 깃털처럼 먼지처럼 이리저리 흩날리며 가볍게 살아보리라.




"나는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하여 오랜 시간 노력하였지만 아직도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오, 친구,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앎뿐이며, 그것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아트만이고, 그것은 나의 내면과 자네의 내면,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그래서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1.

서점에 널려 있는 인생에 관한 책들. 이렇게 살아야 하고 저렇게 살아야 한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책들. 덕장의 오징어들처럼 다 비슷비슷한 몰골을 하고 있으면서도 갖은 자세를 취하며 개성을 뽐내보지만 풍기는 냄새는 다 비슷한들 꼰대 아저씨들의 취향이 다 거기서 거기려니 귓등으로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항상 실망스럽다. 도전을 하라느니, 청춘의 패기, 열정,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알아. 나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넘어야 할 장애물, 알지 마음의 습관. 내가 정말 간절하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표백의 한 구절이 시기적절하게 떠 오른다.

"도전하라고 할 땐 언제고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읽어보진 않았지만 오리지널스라는 책에선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해서 결코 내 꿈이 간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말라. 

는 구절은 솔직히 나에게 굉장한 위로가 되어주지만 어찌됐건 사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도 구구절절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는 것은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책을 써대는 것일까. 자신의 삶을 지지 받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순전히 돈과 명예, 자기만족일 뿐인가. 


보통의 책들(베스트셀러)은 이미 검증된 저자들이 펴내기 마련이다.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자신의 삶에 확신도 있고 그것을 지지하는 세력들도 있으니 책으로 만들 법하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그렇겠고. 물론 좋은 이야기들이 많아. 청춘들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해 검증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 시간을 아까워 하지 않으며 몇 가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미치도록 안달나게 하고 싶진 않고 그런 것은 없다 내 삶에. 굳이 정말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것, 또는 지금 컵라면을 먹고 싶은 것. 

  책을 써낸 사람이나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어떤 한 가지에 대해 열정을 불사를만한 그런 것은 내게 없다. 글 쓰는 것과 영상을 찍는 것,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피곤할 땐 자고 싶고 쉴 땐 쉬고 싶고 대문호가 된다거나 영화나 드라마 제작, 가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것이다. 분명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없다고 자책할 필요가 있나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그냥 어느 정도의 소일거리, 취미생활이라도 만들어 놓는다면 그걸로 된거다. 그래서 나는 취미가 많다. 


꿈을 크게 가져야 하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내가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렇지 못한 우리의 삶을 비난하고 우리 스스로 자괴감이 드는 것은, 책의 저자라는 위치에서 불특정 다수의 독자층도 고려하지 않은 꼰대 아저씨들의 잘난 척에 우리가 당한 것이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이런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 그럼에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일 뿐, 네 스스로의 인생을 살라고 하는 그런 어른 어디 없나.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그것을 찾아낸 소수의 젊은이들 말고, 그런 것이 없거나 있어도 그 정도 열정은 아닌 다수의 청춘들에게 말이야. 


삶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애초에 우리의 삶은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고 내가 여기에 씨부리고 있는 글도 사실은 글이 아닌 어떤 기호이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하고 배우는 게 아니라 각자의 세계를 그저 바라보고 감상할 뿐이다. 




#2.

교육, 배움, 가르침이라는 것을 받으면서 한 때 박탈감을 느낀 적이 있다.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그것들에겐 어떤 목적이 있지 않은가. 교육, 배움, 가르침. 우리는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며 이를 통해 어떤 무언가를 얻는다. 성장, 지식, 통찰력 등 내가 바라는 그 무언가를 위해 가르치는 자를 받아들여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나를 비워야 하는데 이 과정이 나에겐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모든 교육은 주입식 교육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가르치려는 어떤 것, 교육시키려는 어떤 것, 그것을 스승이 변치 않은 채로, 모습과 뜻을 잃지 않은 채로 나에게 전달하려는 것이잖아. 


2015년 겨울,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어느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곳의 수장인 고타마와 수 많은 고빈다, 그리고 나는 싯다르타였다. 고타마는 성장이라는 명목하에 고빈다들을 불러들였고 성장에 이르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내 눈에 그것은 성장에 이르는 길이 아닌, 고타마가 되는 길 또는 고타마가 존경하는 사람이 되는 길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그는 존경 받아 마땅하며 능력있고 멋진 사람이다. 자신의 수업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 열정은 보기만 해도 느껴질 정도로 그 기운이 찬연하다. 그의 수업은 나를 몰입시키며 이를 통해 성장하는 이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박수쳐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으로 성장할 수 없다. 아니 그러한 방식이라면 안하겠다. 


눈물이 날뻔 했다. 어떤 맥락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귀에 선명히 박힌 한 문장, "그렇게 해선 성장할 수 없어요 건영씨." 온몸이 얼어붙는 듯 하였다. 왜냐면 그게 맞는 것 같아서. 나는 당신과 같이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그 안에선 모두 그것을 바래왔으니까) 나에겐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을 확인해서, 나의 행동을 부정하기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해야했다. 말에 토를 달지 마세요. 나는 그것을 참아야 하는 것인가. 견뎌내야 하는 것인가. 


이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가 잘못한 것도 내가 잘못한 것도 없다. 그냥 어떤 비참한 감정을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배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나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나는 다른 것을 배웠다. 아니 느꼈다. 이것은 교육이라고 하기보다 그냥 경험했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저 그녀를 만나고 대화했고 어떤 감정이 따랐을 뿐이며 그 감정을 곱씹다보니 깨달았다. 그것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배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경험하고 느낄 뿐이다. 



  내가 아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으니 
내가 유일하게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 마음뿐이라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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