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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Aug 13. 2016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2/3)

진실이 머문 강물 저켠을 향해

#홍대 #localcoffee



"그 사람의 눈은 오로지 자기가 구하는 것만을 보게 되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으며 자기 내면에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결과가 생기기 쉽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은 오로지 항상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그 목표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까닭이지요. 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 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많지 않은 여러 작가의 각기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면서 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떨림을 느꼈다. 곤충 채집통 속의 곤충들이 각자 다른 소리와 주기로 날개짓을 하듯 그들은 각자의 문체와 호흡으로 떨고 있었다. 책이라는 채집통을 스스로 만들고 매미나 귀뚜라미, 사마귀, 잠자리가 되어, 곤충이 되어 그 갑갑한 책 속에서 위잉위잉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는 그것을 조금은 고상하게 영혼의 방황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저 머리, 몸통, 배로 분류되는 곤충의 살고자 하는 날개짓 뿐일지 몰라. 이는 작가의 숙명일까. 작가라는 타이틀엔 내가 원하는 낭만과 감수성도 베어 있지만 왠지 모르게 뻔뻔하다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


숙명이라면 이 날개짓을 멈출 수 없다. 결국 날아오르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생명력(力)이자 삶과 죽음 사이의 줄타기이다. 그것은 내가 도서관을 걸어오는 길목에 흘린 땀과는 같은 종류의 힘(力)일지라도 조금 더 고차원적이다. 대부분의 영양분과 힘을 체온유지에 사용하는 다수의 온혈동물과는 다르게 마음의 평화, 영혼의 방황을 잠재우기 위해 이성이라는 하나의 자율신경계를 더 가지고 있는 인간은 그것으로써 인간다워진다고 하지만 그 인간이 태초의 인간인지 종교적 인간인지 데스몬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일런지 모르겠다.


더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갈구하고 이상을 좇고 욕망을 채우며 그 사이에서 번뇌하고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위해 머리나 몸을 쓰는데 그것은 마치 천사와 악마가 서로에게 창을 겨누고 있는 것만 같다. 게다가 나를 더 헷갈리게 하는 것은 진짜 순도 100% 악마라면 나 악마요, 내 뿔 보소 내가 나쁜놈이요, 하며 나타날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싯다르타와 고빈다, 무거움과 가벼움은 한 쌍의 날개이며 두 날개의 무게차로 인해 우리는 글을 쓰는 것이다. 두 날개의 박자가 맞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책 속에서 날개짓을 하는 것이다. 나는 문학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발버둥, 몸부림, 날개짓.

싯다르타의 어깨죽지에 달려 있는 한 쌍의 날개, 구하는 것과 찾아내는 것. 원문엔 이렇게 쓰여있다.


"When someone seeks," said Siddhartha, 

"then it easily happens that his eyes see only the thing that he seeks, and he is able to find nothing, to take in nothing because he always thinks only about the thing he is seeking, because he has one goal, because he is obsessed with his goal. Seeking means: having a goal. But finding means: being free, being open, having no goal."


'바라다, 구하다'가 'Seek'이라면 '찾아내다'는 'Find'이고 번역상 '찾아내다'보다 '발견하다'가 더 정확한 의미이다. 비슷한 내용을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 묘비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nikos kazantzakis tombstone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내가 발견한 아름다운 무엇들, 자유를 느꼈던 순간들은 어떤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다. 우연인가 싶을 정도로 소중한 것들은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니었고 산책을 하다가 마주치는 달밤의 꽃들, 가로수길의 플라타너스 잎처럼 우연찮게 발견한 것이다. 아름다웠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더할 나위 없었다. 그저 만끽할 뿐이다. 그럴 땐 마치 내가 투명한 유리잔이 되어 그저 그릇일 뿐이고 각기 다른 색깔의 음료와 낱말들이 각기 다른 온도로 채워졌다가 사라지지만 나는 그것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것은 투명한 잔과 애잔한 추억 밖에 없다. 한그루 나무처럼 뗏목처럼 바람부는대로 흘러가는대로 내버려 두는 것. 그저 흘러가며 주변을 바라보는 것, 관찰하는 것, 발견하는 것. 그 한 가운데에서 울려퍼지는 매암매암 매미소리, 덜컹거리는 에어컨 소리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푸르른 하늘은 내 눈썹을 물들이고 흩날리는 플라타너스 잎새는 동공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그것들에게 어떤 의미를 찾아볼 수 없듯 의미라는 단어에는 의미가 없다. 이것은 나의 한 쪽 날개이다.



그러나 습기를 가득 품어 잘 펴지지 않는 또 하나의 날개.

그래, 삶이라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흘러가듯이 사는 것, 그 흐름 위에서 많은 것을 눈에 담고 바라보는 것. 이라고 이야기 하고 나도 인정을 하지만. 반면에 욕심부리고 시기하고 후회하고 절망하고 걱정하고. 지금의 나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그리워하고 혹시나 싶어 통화목록을 뒤져보거나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고, 무엇을 바라여? 당신의 마음을 바라여, 당신의 마음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한다거나 이별의 슬픔으로 가슴 아파하는 것, 물론 그것은 애초에 내것도 아니었고 이 세상에 내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착각이라도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나의 팔, 나의 다리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연찮게 만났던 것, 당신이 내 곁에 없었던 들이 매우 길었기에 더욱 더 당신이 소중한 것, 떠나간 경험을 많이 해보았기에 더욱더 불안하고 두려운 것. 류시화의 시처럼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리운 것.


과연 단순히 흘려보낼 수 있는 것들인가, 나는 순순히 보내줄 수 있는가.

아니다. 나는 바란다. 원한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어떻게 얻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여행도 마찬가지야. 나는 돈을 모아야 하고 돈을 벌 궁리를 해야 하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야하며 바라는 게 많다. 부딪혀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세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알 수 있다.

싯다르타는 아무 것도 바라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바랄 것이다. 처절하게 바라고 구해야 무소유의 뜻을 알겠지. 솔직히 헤르만 헤세 당신도 바람을 피우고 결혼을 세번이나 했잖아. 당신 보다 스무살이나 어린 처녀와 결혼했잖아. 당신은 처절히 갈구하고 바래왔잖아. 당신의 마음을 이해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마음의 평화가 아니야. 발견하는 게 아니야. 영혼의 방황이라고 미화하지 말아. 아까도 말했듯이 당신은 그저 짝짝이 날개를 달고 태어난 곤충에 불과해. 당신은 조금 더 어린 나이에 그것을 깨달았어야 해. 그래야 당신에게도 자격이 생기고 나도 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 하늘에서 나를 보고 있다면 당신은 부끄러워해야 하고 나를 기특해 해야해.


내가 어느 시점에서, 얼마나 나이를 더 먹어야 무소유를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원히 그것을 모르고 살 수도 있지. 허나 지금의 나는 바랄 것이며 구할 것이며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흘러간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흐름 그 자체라는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나친 피로, 지나친 시련에도 성내어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동양철학의 진수로 글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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