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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아마다바드여행 6

빛의 사원과 왕비의 사랑

by 바 람

인도에서 맞는 두 번째 주말이다. 업무압박에서 벗어난 딸은 벌써 표정부터 다르다. 어디를 가든 좋다고 한다. 미리 예약해 둔 one day drive를 이용해 아마다바드 북쪽 2-3시간 거리에 위치한 태양의 사원, Sun Temple과 왕비의 우물, Rani ki vav를 향해 출발한다. 하루 USD$54에 운전기사까지 포함된 서비스이다.

두 시간여 만에 도착한 태양의 사원은 인당 300루피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게 입구부터 깔끔하게 다듬어진 길 위로 잘 관리된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박물관, 벤치, 화장실등 주변시설들도 곳곳에 보인다. 평화로운 잔디밭 사이 곱게 차려입은 현지인들의 모습이 사원과 제법 잘 어울린다. 견학온 학생들은 낯선 동양인이 그저 신기한 듯 같이 사진 찍자고 아우성이다.


얼핏 외부에서 보기엔 아담한 사원이 내부로 들어갔을 때,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가까이 본 조각상들은 그 정교함에서 오는 깊이가 복잡하고 과한듯하면서도 일정 패턴 안에 표현된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어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외부로 사방이 완전히 개방된 환경에서 겹겹이 세워진 기둥들 사이로 비치는 빛과 그림자, 초록이 함께 연출하는 사원 내 공간은 실규모에 비해 훨씬 크고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빛과 함께 내외부의 조화로운 공간을 연출한 건축가는 가히 천재임에 틀림없다. 사실 잠시 머물다 왕비의 우물로 바로 넘어가려 했는데 도저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보고 느낄 것이 많았다.


첫 번째 사원에서 계단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두 번째 사원은 더욱 놀라웠다. 첫 번째 사원에 비해 다소 닫힌 구조로 되어 있는데, 외부에서 들어오는 절제된 빛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새롭게 펼쳐지는 공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 마치 신비스러운 고대로 여행하는 탐험가가 되는 기분이다. 기둥에서 천정까지 이어지는 정교한 조각들, 제한된 창을 통해 미로같이 연결된 좁은 벽으로 부딪치는 입체적인 간접빛 등은 이곳에서도 사원의 규모를 마술같이 확장시키고 있었다. 색다른 우주를 경험하는 느낌이다. 그 순간 스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가우디의 인도여행 중 틀림없이 이곳을 방문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짧은 순간 얕은 안목의 낯선 이방인조차도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시켜 주는 천재설계자와 장인들의 손길에 고개가 자연스레 숙여지며 마음 깊은 경의를 표하게 된다. 나중에 Heritage walk에서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인도에 남아있는 두 개뿐인 태양사원 중 하나라고 한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구조가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부처의 이마에 부딪쳐 빛나도록 설계한 것처럼 이곳 사원도 그렇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21세기 현재에도 천문과 지리, 건축기술의 정교함에 감탄할 정도인데 과거 신라가 활발한 해상교역을 통해 받아들였던 문화적 여파는 어느 정도였을까 짐작하기 힘들 뿐이다.

아쉽지만 떠나야 한다. 왕비의 우물까지는 40분 거리, 금강신도 식후경이라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가야 될 듯

근처 구글검색을 통해 찾아간 곳은 제법 세련된 인테리어의 the Secret Kitchen이다. 여성셰프가 인도 정통음식부터 일식, 중식 퓨전음식까지 다채롭게 제공한다는 식당인데, 추천받아 선택한 메뉴는 강하지도 않고 은은하고 깊은 재료향이 배어 나오는 인도 정통음식이었다. 특히 녹색 카레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다. 두 사람의 푸짐한 한 끼 점심식사가 1100루피 보다 조금 모자란 금액이었으니 기회가 된다면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식당이다.


도로위의 염소떼. 그외 소떼, 낙타등은 익숙한 풍경이다


드디어 도착한 곳은 파탄에 있는 인도 100루피 지폐 뒷면에 인쇄된 Rani ki vav 왕비의 계단식 우물이다. 인당 500루피 입장료를 내고, 입구에서 영어가이드에게 700루피를 지불하기로 하고 함께 입장하였다. 강한 인도식 영어발음에 채 20% 정도나 알아 들었을까? 반복되는 힌두 이름에 어지러울 지경이었지만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돌계단끼리 서로 연결시킨 나무 쐐기와 돌들을 서로 맞물려 쌓아 올린 얽힌 구조는 강도 6.9,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던 2001년 구자라트 대지진에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무척 인상적이다.

땅 위로 지어진 건축물들에 익숙한 반면에 열린 하늘아래 한 계단씩 땅속으로 내려가는 건축물을 체험하는 것은 정말 새로웠다.

1000년 전 농작물 재배 및 마시기 위한 우물을 왕에 대한 왕비의 사랑으로 47년 동안 지었는데, 이후 모래폭풍과 홍수로 매몰되었던 유적지가 1940년대 어느 농부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고고학자들에 의해 39년에 걸쳐 복원되었고, 201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화 같은 이야기이다.

지하 7층의 깊이인데, 역설적이게도 깊이 내려갈수록 조각상들의 모습이 이제 갓 깎아낸 듯 각이 살아있고 생생하다. 299명의 미녀상과 여러 신들의 이야기로 사방 7층이 가득하다. 장난스레 미녀의 옷을 벗기는 원숭이의 모습이나 아이라인을 그리는 미녀, 립스틱을 바르는 미녀, 고타마 부처, 건축가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오늘날 유튜브를 보는 것처럼 당시 일상의 삶을 풍성하고도 재미있고 생생히 구현한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다양하고 즐거운 이야깃거리를 공개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자동차는 물론 K-드라마, 팝, 음식등 다양한 한류의 이야깃거리가 인도인들에게도 친숙해져 있는 것은 놀랍고 반가운 현상이다.

하루빨리 양극으로 치닫는 어려운 정국에서 벗어나 평범한 소시민들이 일상의 삶에서 다양한 얘기를 평화롭게 나눌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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