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피아노협주
아빠가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딸은 조성진의 카네기홀 공연을 예약했다. 워낙 청음이 발달한 딸이라 이번 공연을 은근 기대하고 있다. 피츠버그심포니오케스트라(Pittsburgh Symphony Orchestra)의 만프레드 호넥(Manfred Honeck) 지휘자와 조성진피아노 협연이다. 좌석은 거의 매진임박, 가까스로 앞자리를 구했다. 러시아작곡가 레라 오어바흐의 얼어붙은 꿈(Lera Auerbach, Frozen Dream(2025)),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주제의 랩소디(Rachmaninoff, 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 43(1934)),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Shostakovich, Symphony No.5 in D Minor, Op. 47(1937)) 3곡이 120분간에 걸쳐 공연된다. 조성진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이미 오디오를 통해 수차례 들어봤지만 오어바흐의 곡과 쇼스타코비치의 곡은 공부를 해야 했다.
이미 클래식에 깊이 있는 해설이 많은 가운데 공연에 대해 글을 남긴다는 것이 섣부른 행동이 아닌가 조심스럽지만 공연에 최적화된 카네기홀 아이작스턴오디토리엄(Issac Stern Auditorium)에서의 경험은 신선했다. 직사각형구조에 높은 천장이 주는 몰입감과 무대 앞자리에서 소리의 반향 없이 소리를 그 자체로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연주감상에 생생함을 더했다. 첫 연주곡 ‘얼어붙은 꿈’은 사전에 실내악곡으로 들었을 때와 교향곡으로 변주된 곡과의 차이는 너무 커서 사전 예습을 무색하게 하였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살얼음을 밟는 듯한 음향이 악기로 구현되며 깊은 감성으로 이끌어가는 클래식의 현대적 해석이 놀라울 뿐이다. 시간과 공간이 무한 확장되는 경험이다. 연주가 끝나고 무대인사에 나오는 레라 오어바흐작곡가도 무대를 돋보이게 하는데 한몫을 한다. 이어진 조성진의 피아노연주는 역시 말 그대로 피아노연주의 정석을 보는 듯 절제되고 정교한 연주에 연신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숨죽이며 지켜본 20여 분간의 악보 없이 진행되는 하얗고 기다란 손이 건반 위에 춤추는 모습은 오랜 시간 갈고닦아 예술로 승화된 훈련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자그마한 동양인이 더 이상 작게 보이지 않는 멋진 무대이다. 열렬한 앙코르박수에 짧은 곡으로 화답하는 친절함에 잠시 흐뭇해진다. 20분간의 짧은 휴식 후 펼쳐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은 만프레드 호넥지휘자에게 그래미상을 쥐어진 곡이기도 하다. 워낙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공연이기도 했지만 연주자들의 표정을 보면서 잡음 하나 없는 원음의 생생한 연주를 듣는 것은 공연에 좀 더 가깝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도 4-50분간의 연주시간 내내 열정적으로 연주자들과 함께 하나 되어 지휘하는 노장의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행위예술로 아름답다. 숨결보다도 더 섬세하게 움직이는 손끝의 움직임, 웅크렸던 몸에서 폭발하듯 튕겨 나와 리듬을 타는 동작, 순식간에 회오리바람결 같이 휘젓는 지휘봉을 잡은 손놀림 하나하나가 모두 연주자들과 깊게 연결된 동작으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예술이다. 구소련 스탈린의 대숙청시기에 작곡(1937)된 이 곡은 연주시간이 지날수록 집요하게 파고드는 선율과 반복적 리듬으로 숨을 멎게 하면서 내면에 켜켜이 쌓여있는 집단무의식의 심연으로 안내한다. 러시아의 감성이란 이런 것인가.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1937)가 떠오르고 치앙마이 현대미술관(MAIIAM) 벽면을 장식한 우밧삿(Ubatsat) 작가의 미얀마게르니카버전 Burmica(2022) 작품이 떠오른다. 폭력과 전체주의, 그 가운데 인간이 겪는 공포와 좌절, 희망등 숨겨진 복잡한 느낌을 인류 보편적 감성으로 끌어낼 수 있는 힘은 예술가의 몫이다. 그림을 복사본으로 보는 것과 원작을 보는 차이 이상으로 같은 시공간에서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 되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큰 몰입감을 주는 감동적인 경험이다. 그림감상은 관객주도적인 예술 감상이고 음악은 연주자주도적인 예술감상이라는 기존의 나의 견해를 이번 공연감상을 통해 수정해야만 했다. 주어진 연주시간 내내 관객이 주도적으로 소리를 보고 듣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단지 40여 분간 연주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조금 멀리서 들었더라면 전체적인 음향을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배부른 아쉬움이 있었지만 딸은 1초도 놓치지 않고 음을 즐겼다고 하니 이 또한 각자의 감각과 감성의 차이이고 함께 감상하는 풍성함이다.
돌아오는 길, 벅찬 음악감상을 나누느라 뺨에 부딪치는 12월 차가운 겨울바람도 잊었다.
예술은 인간의 위대함을 깨우쳐준다. 나도 인간이다.
울림 있는 딸의 한 줄 감상평이다.
12월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