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첼시갤러리 Chelsea

순수한 사랑 Innocent love - Pace 65

by 바 람


어젠 날씨가 갑자기 영하 7도까지 추워졌다가 오늘은 영상으로 기온이 올랐다. 날이 흐렸지만 더 추워지기 전에 첼시갤러리들을 방문해야겠다고 집을 나선다. 23번 버스를 타고 10번가에 내리면 하이라인으로 오르는 계단도 나오고 갤러리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허락하면 하이라인을 걸으며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카메라를 챙기고 나섰지만 갤러리 산책에 4시간이 훌쩍 지나가 체력이 바닥이다.

제프 쿤스 자기시리즈(Jeff Koons, Porcelain series)
Lorenzo Mattotti, Momentum(Italiy). Yongjae Kim, Distant light(Korea). Richard Humann.
Nicolas Galadin, Shakespeare. Sean Scully, Tower 외
Claudia Wieser, A personal unit. Eric Zener, Shifting tides2025,. Friedrich Kunath, Aimless love.
Andro Wekua(Geogia)외

첼시갤러리산책은 예술의 숲을 탐험하는 기분이다. 때론 편백나무숲, 물오리 떼, 구름이 흘러가고, 잔잔한 호수도 만난다. 다람쥐는 기본이고 운이 좋으면 사슴도 본다. 계절이 바뀌듯 새로 단장한 갤러리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풍성하다. 작가들의 이름을 다 알 수도 없고 그들의 깊은 작품세계 또한 모두 짐작할 수도 없다. 어떤 작품은 자주 본 덕에 좀 익숙하고 어떤 작품은 처음 봐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류 보편적 정서와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이면 묘하게 공감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미디어나 전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시대적 보편감성이 생긴 것이다. 즐기는 것에 무슨 기준이 필요한가. 시선이 가는 것을 즐기면 되고 불편한 것은 지나치면 된다. 그래도 갤러리컬렉션이나 미술관을 찾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부분이다. 완성도는 단순하면서도 어렵고, 어려우면서 단순한데 스스로 그 경계를 즐길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래도 갤러리나 미술관의 전문가들 손에 의해 걸러진 작품들을 믿고 즐기는 것이 도움 된다. 그래도 선택은 언제나 관객의 몫이다. 첼시의 이번 시즌은 12월 20일까지인데 그 이후에는 내년도 시즌을 위해 휴관에 들어간다고 하니 시즌이 끝나기 전에 한 번쯤 더 와야겠다.

체력이 바닥날 때쯤 도착한 곳이 Pace gallery. 개관 65주년 기념전시회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육중한 철문을 당기고 들어선 갤러리입구를 지나치면서 무심히 읽었던 아그네스 마틴 순수한 사랑(Agnes Martin, Innocent love). 가볍게 인사하는 경비원의 Enjoy~ 인사말을 듣자마자 돌아선 정면에 전시된 하얀색 작품 앞에서 그냥 우두커니 멎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 자신이 입구를 막고 있는 것도 잊은 채 한동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캣츠킬 호수 자작나무숲 안개 낀 대자연에 빨려 들어간 느낌이었다. 아름다움이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이는 것이라는 표현은 나중에 영상을 통한 그녀의 눈빛을 보고 더욱 이해가 되었다.


내 집의 바닥인 고요함은 세상에 이미 알려진 모든 질문들과 답이다.

감상적인 가구는 평화를 위협한다.

반사된 석양빛은 하루를 큰소리로 외친다.

- 아그네스 마틴


갤러리벽면에 적힌 그녀의 짧은 글이다.

가구조차 사치스럽고 고요한 자연과 벗하며 깊은 침묵 가운데 고독함을 즐긴 한 인간의 삶이 그려진다.


인터뷰하는 영상에 비친 작가의 눈빛 또한 잊을 수 없다. 눈을 뜨고 있는데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다. 밖을 보는 눈이 아닌 내면을 보고 있는 눈이 눈빛을 통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맑고 순수하고 깊이 있는 이런 눈빛을 본 것은 행운이다. 대자연이 인간의 눈빛에 담겨있는 것을 처음 보는 것 같다.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은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하여 작가 생활을 하면서 페이스(Pace gallery)와는 1974년부터 30차례나 전시회를 가질 만큼 인연이 깊단다.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이라는 평단의 해석에 정작 그녀 자신은 그 표현을 거부했다고 한다. 거친 젯소로 칠해진 하얀 캔버스 위에 맑게 풀린 아크릴물감으로 천천히 한 획 한 획 채워간 그녀의 페인팅은 부서지고 지워질 듯 가느다란 연필선의 규율 위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숨결 같은 바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조금씩 겹쳐진 붓질은 묘한 공간감을 표현하여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시각적 착시가 자연스럽게 일어나 눈으로 보는 장면이 내면의 상상력을 자극해 새로운 미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녀가 추구해 온 것은 순수함, 진실, 아름다움. 영성적이란 표현을 쓸 때조차 인간 모두가 영성적인데 자신이 특별히 영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이유가 느껴진다. 동양의 도가사상과 선사상에 대한 깊은 관심이 이미 그녀의 삶에 깊게 녹아져 있어 자연의 순수함과 고요함, 소박한 삶의 가치가 작품을 통해 그대로 보이고 느껴진다. 붓질조차 채우지 않은 여백으로 가득하다. 이는 묘하게 시공간 너머의 빛으로 이끈다. 그녀가 말하는 형태 없음, 대상 없음, 선 없음, 비정형, 슬며시 드러남, 빛, 가벼움등 사실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의 본질을 작품을 통해 넌지시 안내한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남겨진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즐겁고 신비운 경험이다. 이것이 예술의 가치이고 인간의 위대함 아닐까.

문득 지난 요세미티공원갤러리에서의 윌리엄 닐(William Neill) 사진작가가 떠오른다. 이번에도 선물처럼 찾아온 첼시의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의 깊이 있는 순수한 눈빛과 작품들에 벅찬 가슴을 달래며 차가운 바람도 잊고 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첼시 대표적인 갤러리 페이스(Pace) 개관 65주년 기념 전시회,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전이었다


이렇게 또 12월의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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