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린 딸
뉴욕엔 여러 재즈공연장이 있다는데, 기회가 되면 들러보고 싶었다. 그 마음을 눈치챘는지 딸들이 몇 번 가려다 대기줄이 너무 길어 포기했다던 토미재즈바(tomijazz)를 가자고 한다. 금요일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에 들러 함께 갔는데, 역시나 대기줄이 벌써 한창이다. 그래도 이번엔 포기할 수 없다며 2시간여를 끝끝내 버텨 들어섰다. 6시 반에 줄을 선 게 8시 40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다니… 아주 작고 기다란 지하 홀중앙에는 바가 있고 입구좌측구석으로 무대가 있다. 음악소리는 희미하고 젊은 청춘들의 떠드는 소리 가득하다. 공연이 주가 아니라 가벼운 식사가 가능한 재즈공연이 있는 낭만적인 데이트장소로 적합한 분위기였다. 공연은 아쉬웠지만 기다리는 시간 내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모두 탈탈 털어가면서 웃고 떠들었던 추억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토미재즈바의 경험을 살려 이번엔 공연을 주로 하는 재즈바를 찾았다. 제미나이는 Blue note, Village vangard, Smalls jazz club, Miezzaro 등을 추천해 준다. 재즈바 입문용으론 Smalls jazz club이 적절할 것 같아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정말 스몰 하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지하는 짙은 어둠으로 머리를 숙여야 할 것같이 천정이 낮게 느껴지고 20평 남짓 보이는 작은 공연장 우측엔 기다란 스탠드바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밀하게 배치된 접이식 의자는 무대 코앞까지 밀고 들어가 있다. 조금 일찍 온덕에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보니 무대와 너무 가깝다. 연주자를 위해 표정관리도 잘해야 할 것만 같은 거리이다. 이제 라이브연주를 온몸으로 들을 준비가 되었다.
베네수엘라출신 실바노 쿠아르테밴드(Silvano Monasterios Quartet)의 공연이다. 실바노는 그래미후보로 선정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라고 하니 은근 기대된다. 60이 넘은 노장이지만 전심을 다하는 피아노 연주와 베이스로 두들기듯 전달되는 음파, 잔잔바리 드럼, 중앙의 색소폰연주. 생생한 소리와 연주가 입체적으로 끊어질 듯 새롭게 전달된다. 공연 중 옆을 보니 딸은 살짝 굳어 있는 느낌이다. 한 시간 공연이 끝나고 나서니 그제야 딸은 말문을 연다. 라이브공연은 새로운 경험이지만 아쉬운 점이 많아 다음엔 좀 더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고 확인하고 싶단다. 딸은 내가 갖지 못한 음을 듣는 귀가 있다. 소리에 민감하고 신기할 정도로 음정을 정확하게 읽어낸다. 감각으로 따를 수 없는 세계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공연을 함께 보면서 성장하는 딸을 새롭게 만나는 즐거움이 깊어진다. 그동안 뉴욕생활 12년이 지나도록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지만 이젠 아빠에게 공연들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해 버린 딸의 모습이 오늘따라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