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무용단Alvin Ailey American Dance Theater
이번 겨울 맨해튼시내를 돌아다닐 때 계속 눈길을 끄는 광고가 있었다. 버스에 부착된 댄스공연 포스터이다. 새처럼 날아오르는 근육질몸매의 흑인댄서 모습이 너무도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쳐 보인다. 댄스에 별 관심이 없던 딸도 흔쾌히 같이 가보자고 한다. 말을 꺼내면 바로 예약실행하는 단호박매력의 성격이다.
시선을 끌었던 공연포스터는 앨빈 에일리 무용단(Alvin Ailey American Dance Theater, AAADT) 이 1971년 이래 뉴욕시티센터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이어온 연말연시 홀리데이시즌 정기공연이다. 이미 뉴욕의 문화전통으로 자리 잡아온 단 5주간의 공연이 운 좋게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예약한 날은 Premiere night로 2시간에 걸쳐 5개의 안무가 진행된다. Blink of an Eye, A Case of You, Difference between, Song of the Anchorite, 마지막으로 Grace. 공연 중 개인촬영은 금지되어 마음을 비우고 오롯이 공연을 즐기기로 한다.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 대부분은 얼핏 보기에도 제법 연륜 있어 보인다. 비록 희여진 머릿결에 윤기는 사라지고 피부 역시 주름 가득하지만 우아하고 세련된 복장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연말연시 전례가 되어버린 공연을 즐기러 나온 모습이다. 관객들은 공연 중간마다 아낌없는 박수와 열렬한 호응을 보내고 댄서들이 나와 인사할 때면 그들의 이름까지 부르며 환호해 줄 정도로 관심과 애정이 뜨겁다. 카네기홀에서의 관중반응과 약간의 온도차가 미묘하게 다른 기류로 느껴진다. 그것은 관객 모두 자신의 젊음을 확인하는 열기 같다.
두 번째 안무가 끝나고 등장한 앨리시아무용감독(Alicia Geaf Mack)은 모든 댄서를 압도하는 엄청난 키의 소유자다. 사람들에게 춤을 돌려준다(Deliver dance back to the people)는 말과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이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인사말이 의미 있게 와닿는다.
아이작 펄먼(Itzhak Perlman)이 연주한 바흐의 바이올린솔로곡을 배경으로 시작한 ‘눈 깜빡할 사이(Blink of an Eye)’ 로 공연은 문을 열었다. 짙은 어둠 위 강렬한 조명아래 탄탄하게 빛나는 근육질 몸들이 역동적이고 우아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한 명에서 두 명, 때론 세 명에서 일곱 명, 쉴 새 없는 움직임 속에도 꼼짝 않는 멈춤이 고정되어 있기도 하다. 반복되는 긴장과 이완, 튕기며 구르는 발자국소리가 음악과 하나 된다. 그러한 움직임들은 눈 깜짝할 만큼의 순간, 짧지만 영원함이 깃들어있는 그 순간이 현존하는 실재와 비어있는 부재, 변화와 멈춤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철학적 주제에 접근한다. 또한 마치 소리처럼 흐르는 몸의 움직임들을 통해 만물이 움직이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절제된 동작 하나하나 고도로 훈련된 몸의 언어는 빛나도록 아름답다. 시간이 지날수록 댄서들의 가슴과 등에는 서서히 땀이 차오르고 있다. 홍일점인 동양댄서는 작지만 다양성의 상징처럼 돋보인다. 중간 휴식시간에 이어서 흑인 남성솔로댄서로 묵직하게 시작하는 후반부 ‘은둔자의 노래(Song of Anchorite)‘는 재즈선율과 섞여 묘하게 슬프도록 아름답다. 딸은 그의 안무가 이번 공연의 최고였다고 한다. 이어지는 마지막 ’ 신성한 은총(Grace)’ 은 구릿빛 피부색과 극명히 대조되는 하얀 의상의 흑인 여성댄서가 신비로우면서도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 나온다. 커다란 키에서 뿜어 나오듯 휘감으며 그려지는 우아한 손짓과 힘차게 뻗어 날아오르는 발동작등은 그녀 혼자서도 무대를 가득 채우고 남았다. 한 명의 파워풀한 춤으로 시작하여 리듬에 맞춰 겹겹이 삼삼오오 진열을 오가는 사이 어느덧 열한 명의 숨 막히는 군무로 발전한다. 아프리카전통춤의 반복되는 리듬과 동작이 현대무용 속으로 점진적으로 녹아지는 장관은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원시적 기억을 일깨우고 있다. 춤과 리듬으로 우리는 하나 된다. 하나다…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감흥이 좌석을 흔든다.
예술은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다
공연이 끝나면서 단원들은 일제히 나와 관객들에게 세 번에 걸쳐 인사를 드리는데, 딸은 아마도 한 번은 무대를 향해, 또 한 번은 무대를 이룬 자신들을 향해, 그리고 마지막은 관객을 향해서 인사하는 것 같다고 하는 데, 비슷한 이유에서의 무용단관습을 그럴듯하게 맞춰냈다. 일어서는 관객들을 향해 리더 격인 댄서가 지속적인 공연을 위한 모금요청을 한다. 예술가들이 집세, 밥값등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원과 기부하는 문화가 왠지 낯설지 않다.
무용단의 현실적 모습을 대하니 문득 추억의 영화가 아련히 떠오른다. 귓가에 속삭이듯 맴도는 what a feeling~ 프로댄서가 되기 위해 극단의 오디션에 도전하는 댄서의 이야기, 1983년 개봉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제니퍼 빌스(Jannifer Beals) 주연의 플래시댄스(Flashdance) 주제가와 강렬했던 춤이다. 영화 속의 현장에 와있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뉴욕이 아니고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지만 왠지 비슷한 감성이다. 나 역시 젊음의 추억이 이 공연장까지 이끌고 온 것 아니었을까 되물어 본다.
지하철역을 나서는데 눈이 날린다. 한쪽 하늘은 맑은데 멀리 구름 낀 하늘에서 눈을 뿌려주고 있다. 커버린 딸과의 데이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함께 해주니 고맙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