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뉴욕 White New York

The MET Cloisters

by 바 람

뉴욕이 2025년도를 그냥 보내기 아쉬웠는지 깜짝 이벤트를 하나 더 준비해 주었다. 트럭과 비행기운항을 멈출 정도로 밤새 눈선물을 쌓아 올렸다. 3년 만의 폭설이란다. 하얗게 눈으로 덮인 아파트단지 내 언덕에서는 신난 아이들이 연신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썰매를 탄다. 딸들은 만약 눈 오는 것이 싫어지면 나이를 먹었다는 신호로 알아차리라며 슬쩍 나를 쳐다본다.

비 오거나 눈이 올 땐 두말할 것 없이 집이 최고다. 하지만 떠나기 아쉬운 여행객은 그럼에도 용기 내어 문밖의 차가운 눈송이를 마주한다. 시간이 허락되면 가보려 했던 더매트클로이스터스(The MET Cloisters)가 아직 기다리고 있다. 맨해튼 서북쪽 허드슨강이 보이는 포트 트라이언파크(Fort Tryon Park)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메트클로이스터스는 중세유럽 건축과 미술, 정원등 당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건물부터 새로 지은 독특한 곳이다. 박물관의 유래를 살펴보니 1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의 조각가이자 수집가인 조지 그레이 바나드(George Grey Barnard)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버려지거나 방치된 수도원의 기둥, 회랑(Cloister), 조각들을 수집하여 뉴욕에서 개인 박물관을 연 것이 시작이었다. 이 수집품을 1925년 록펠러 2세가 매입하여 매트로폴리탄박물관에 기부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록펠러 2세는 이것도 모자라 이 수집품 전시를 위한 새로운 박물관 건축비 전액 지원은 물론 고즈넉한 중세 수도원분위기를 지키기 위해 포트 트라이언파크와 박물관에서 바라보이는 허드슨강 건너편 부지까지 모두 구입해서 기부했다고 하니 그 애정과 스케일은 정말 남다르다. 대부분의 미국박물관들은 이렇게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공을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훌륭한 문화전통을 쌓아 가고 있는 대표적 현장이다.

클로이스터스에서 바라보이는 허드슨강

유럽수도원을 찾아가듯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세련된 현대뉴욕도시는 뒤로 사라지고 투박한 돌로 쌓아 올린 유럽의 오래된 성 같은 박물관이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검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욕망의 범주(Spectrum of Desire)’라는 제목의 특별전시회 안내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중세시대 엄격한 종교의 권위아래 억제된 인간욕구가 어떻게 중세예술에 녹아져 있는지 살펴보는 특별전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나 순교성인들의 몸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반나체로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성직자등에 올라탄 여인의 조각상등 유머러스한 작품도 감춰진 인간의 욕망의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예수와 사도요한이 함께 있는 조각상도 온화하고 성스럽지만 따뜻하면서도 보기에 따라 묘한 기류가 흐르는 친밀한 관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기획전이다.

건축가 찰스 콜렌스(Charles Collens)는 프랑스에서 실제로 가져온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으로 된 수도원 5곳(Saint-Michel-de-Cuxa, Saint-Guilhem-le-Désert 등)의 돌기둥과 아치들을 현대적 구조물과 정교하게 결합시켜 전체적인 박물관설계를 했다고 한다. 5개의 회랑을 거닐 때는 중앙의 정원에서 쏟아지는 빛이 초록과 어우러져 회랑의 다양하게 조각된 기둥의 몸체와 상단 머릿돌의 모양에 부딪치며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박물관내부 복도와 회랑으로 미로처럼 연결된 전시홀은 스페인, 독일, 프랑스 각지에서 옮겨온 다양한 예술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의 무겁고 두툼한 로마네스크양식을 시작으로 복도를 따라 점차 가벼워지는 초기고딕, 그리고 높고 화려해지는 후기고딕 건축양식으로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구조는 수백 년 중세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공간에서 퍼즐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이어져 있다. 특히 12세기 스페인 교회의 아프스(Apse, 반원형 제단 부분)를 통째로 옮겨와 설치한 푸엔테두에냐 예배당(Fuentidueña Chapel)에 들어서면 이 순간 이곳은 중세 스페인예배당에 와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럽 전역에 흩어져있는 예배당과 수도원이 뉴욕 맨해튼 한 복판에 작은 유럽으로 옮겨져 있다. 공간이 주는 힘이다.

뉴욕을 떠나기 전 짧은 유럽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자신들 문화의 뿌리를 사랑하며 지켜가는 재력과 안목, 그리고 열정을 갖은 뉴요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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