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삶
기습적인 A형 독감으로 지난 주간은 유발하라리교수가 쓴 호모데우스를 벗 삼아 지냈다. 호모사피엔스 전작에 이어 2017년에 한국어로 발간했던 책인데, 당시 구입해 두고 두툼한 두께의 위압감에 눌려 눈으로만 보다가 이제야 펼쳐본다. 그간 유튜브를 통해 인류의 흔적을 뒤지던 차, 쉬는 김에 용기 내어 책장에 묻어둔 호모데우스를 뽑아 들었다. 보통 눈매가 아니다. 수많은 참고문헌을 섭렵하며 써 내려간 인류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누구나 한 번쯤 의문을 가질 법한 주제를 인류는 상상의 이야기를 믿음으로써 상호적실재로 구현해 나가는 특징을 가진 호모사피엔스로 해석하면서 인류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기를 거치며 데이터혁명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현시대를 인본주의 자유주의 시대로 정의하는데, 자유쥬의 사상의 전제인 개인(indivisual)에 대한 개념을 보면서 서구식 사고의 전형적인 관점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동시에 그를 반박할 논리를 정리해 봐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고 인류와 구분되어 현재까지 생존해 나갈 수 있던 주된 특징이 유연한 협력능력에 있다고 한다. 그 특징은 유전자 속에 있는 것이고 이것은 일종의 알고리즘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알고리즘으로 이해되는 순간 알고리즘을 생성하는 주체가 유기체에서 무기체로 전환 가능하고 이것은 이미 시작된 인공지능 시대가 왜 시대적 변화의 주된 흐름에 힘을 싣게 될 수 있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유연한 협력의 대상이 유기체에서 무기체로 확장되는 시대이다.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을 잘하며 끝 모르게 성장하는 사림들과 뒤처지는 사람들 간의 간격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그 간격을 좁혀보려 애쓰는 사람들 역시 소수이지만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호모데우스 70여 페이지를 남겨두고 문밖을 나섰다.
오랜만에 찾아간 한강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며칠 흐린 날씨를 뒤로 하고 맑게 개인 하늘은 언제 미세먼지 가득했었는지 그저 찬란한 초여름을 노래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풀잎과 잔잔한 물결, 얼굴에 스치는 따사로운 바람은 초원을 달리던 유전자를 일깨우는 것 같았다. 유전자의 힘이던, 호르몬의 활성화던 뉴런의 전기적 반응이든 간에 이 순간 기쁨은 기쁨이다.
기쁨도 잠시,
탄천을 지나 성수대교로 가는 길에 비실비실 뒷바퀴에서 바람이 빠지고 있었다. 막 영동대교를 지나던 참이라 탄천으로 돌아가느니 반포까지 가보자고 앞바퀴에 체중을 실어가며 달렸다. 하지만 성수대교도 못 미쳐 뒷바퀴바람은 완전히 빠진 상태였다. 가벼운 마음과 복장으로 나선 한강길이라 미처 이동식 소형펌프장비를 챙기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성수대교밑 작은 쉼터까지 자전거를 끌고 갔는데, 마침 소형펌프를 메단 자전거를 발견했다. 두리번거리며 자전거의 주인을 찾아 도움을 청하니 기꺼이 도와주신다. 튜브를 교체하고 바람을 넣는데, 웬걸 펌프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다. 안타깝지만 고치는 것을 포기하고 주섬주섬 정리를 하니 의인은 자기 자전거를 내어주며 탄천에 가서 바람을 넣어오라 권하신다. 15년간 함께해 온 애마를 선뜻 내어주시는 것이다. 그리곤 배낭에 넣어온 커피를 꺼내시며 내게 건넨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유연한 협력의 대상이 힘 있는 자에 치중되어 왔어도 늘 곤궁한 처지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숨어있는 의인들의 협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는지 몸소 체험해 본 하루였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