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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Jun 20. 2023

자전거명상

힘 빼기

새벽 6시, 5명의 친구들은 용인으로 모였다.

그간 익힌 둔근페달링, 일명 토크페달링을 시험해 볼 겸 속초, 양양, 주문진 일대 120여 킬로의 동해안길을 6월의 정모코스로 택했다. 새벽잠울 설친 터라 아직도 살짝 몽롱하고 벙벙하다. 아니나 다를까 클릿슈즈를 빼먹고 왔다. 그렇다고 돌아가서 가져올 수도 없고, 난감해할 때, 친구들은 이참에 새로 신발 하나 장만한다며 자연스럽게 강릉시를 경유해 가는 코스로 조정했다. 어떤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사건자체를 있는 그대로 함께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연륜, 서로에 대한 우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마침 문을 연 매장을 찾아 적절한 신발을 구하고 실펑크 난 튜브도 교체하니 이제 편하게 달릴 준비가 되었다.


북양양 IC 근처 숙소에서 짐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 마침 점심때라 속초항 근처 생활의 달인에 소개된 막국수집을 찾아가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파란색 자전거 동해안종주길 안내선을 따라 펼쳐지는 푸른 바다, 한낮의 강렬한 태양볕도 바닷바람에 씻겨나간다. 한 발 한 발 페달링에 맞춰 가슴도 설렌다.

의식을 골반과 둔근에 두고 천천히 페달링을 한다. 허벅지에 묵직이 힘이 들어간다고 느껴지면 힘을 빼고, 종아리가 뭉치듯 힘이 들어간다 싶으면 다시 힘을 뺀다. 그리고도 발바닥이 딱딱하게 힘이 들어갔다고 느끼면 슬쩍 힘을 뺀다. 가능한 통증으로 발전되기 전에 부드럽게 힘을 뺀다. 힘을 빼면 페달링이 안될 것 같지만 페달의 정점에서 엉덩이에 힘을 살짝 주며 마치 팽이치기하는 듯한 리듬으로 툭툭 발로 차듯 자연스럽고 가볍게 체중 실린 발무게를 페달에 맡기면 페달은 돌아간다. 체중이 안장에 쏠려 괴롭혔던 엉덩이 통증도 자연스레 좌우로 나누어지며 회전하는 페달에 흘러 빠져나간다.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처럼 한 발 한 발 내딛는 자세에 따라 배꼽의 위치가 움직인다. 물고기가 헤엄치듯 유연한 모습이다. 힘을 빼니 당연히 힘이 들지 않는다. 몸에 힘이 빠지니 호흡도 길고 깊어지면서 하체근육에 쏠렸던 의식이 주변으로 확장될 여유가 생긴다. 눈앞에 펼쳐지는 경계 없는 푸른 바다와 하늘, 푸르른 나뭇잎, 진록의 시원한 나뭇잎그림자. 비릿한 바다내음 그리고 간간이 스치는 상쾌한 솔향, 슬쩍 다가오는 달달한 아카시아향, 진득한 밤꽃향 등이 온전히 내 몫이다. 익숙하게 사용했던 허벅지, 종아리, 발목근육들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가장 크면서도 의식적으로 잘 사용하지 못했던 엉덩이근육이 이제 진면목을 드러낸다. 힘을 주고 돌려야만 돌아갈 것 같은 인생의 수레바퀴가 묘하게 겹쳐진다. 허벅지의 힘, 종아리의 힘과 발목의 기술로 힘주며 살아온 시간에서 이제 숨어있지만 내 몸에서 가장 큰 근육처럼 내 삶을 이끌어온 숨겨진 깊은 동기를 알아차리고 나를 맡겨볼 때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간 사용했던 삶의 기술과 힘을 다시 사용하면 바로 고통의 신호가 온다. 살며시 주던 힘을 빼라는 신호이다. 사실 그 신호를 얼마나 무시하며 살아왔던가. 또 얼마나 많이 엉뚱하게 힘주며 살아왔는지…

이제 내 안의 더 큰 힘에 삶을 맡기며 살아갈 좋은 기회이다.


사진과 글로 다 담을 수 없이 아름답게 펼쳐진 푸른 수평선과 조화롭게 드러난 근육질의 바위섬들, 그 사이사이 계곡물처럼 맑은 교문리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잠시 망중한을 즐긴다. 급할 게 없다.


가벼운 산책길 같던 왕복 50여 킬로 첫날 주행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에는 바베큐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 맡은 바 상을 차린다. 신들린 듯 휘젓는 염교주의 불판 위 손놀림으로 두툼한 돼지고기가 그윽한 숯향에 고소하게 기름으로 뒤덮이며 노릿노릿하게 구워지고  뒷마당에서 캡틴이 갓 뜯어온 아삭아삭한 상추와 근처 마트에서 사 온 고추, 마늘이 한상 가득 수북하다.  여기에 이짱 덕에 살며시 건네받은 옆투숙객의 쌈장이 어우러져 우리들의 만찬은 깊어가는 여름밤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각자 내일 함께할 라이딩을 위해 자전거를 정비하고 장비들 충전하면서 툭툭 주고받는 자잘한 수다가 리드믹 한 EDM 못지않다.

창문을 타고 들려오는 찌르르 지르르 잔잔한 벌레소리와 새르륵 그르렁, 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앙상블로 자장가 되어 내일을 재촉한다.



둘째 날은 모두들 일찍 일어났다. 아침은 돼지고기 곁들인 성대한 라면정찬으로 에너지 보충완료. 어제의 누적된 피로도 아랑곳 않고 페달링이 가볍고 힘차다. 살짝 구름 낀 회색하늘이 라이딩에 더없이 좋은 날씨이다. 해변을 따라가는 곳곳에 순록처럼 빛나는 청춘남녀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상인들은 곧 있을 여름대목을 위해 분주하게 점포를 단장하고 있다.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호흡의 기운과 몸 안의 에너지가 자전거의 페달에서 바퀴를 거쳐 대지를 가로지른다. 자전거명상이 따로 없다. 깨어있는 의식 속에 살며시 알아지는 감각을 알아차리고 가볍게 떠나보낸다. 유한한 존재가 완전한 몰아의 자유까지는 어렵지만 이 순간 주어진 조건에서 거리낌 없고 가볍다. 가벼우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몸의 리듬을 타고 휘파람소리도 나온다. 언덕길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저 걷듯이 한 발 한 발 체중을 옮겨가며 페달링을 하다 보면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 무리할 필요가 없다. 고개 지나면 시원한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일상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 자꾸만 힘이 들어가고 집착과 욕심이 삶을 무겁게 만들고 자신과 주변을 힘들게 한다.


주문진항을 목표로 했지만 일정상 양양 남애해수욕장을 기점으로 방향을 돌렸다. 출출한 위를 달래고 부족한 에너지를 채우는데 치즈 그득한 탄수화물 피자가 제격이다. 피자정비소라는 재미난 이름에 끌려 찾아간 곳은 조명과 작은 식도구까지 구석구석 젊음의 센스가 반짝이는 인테리어로 시선을 즐겁게 한다. New York Style 16인치 피자란다. 이탈리안 스타일과는 다르게 도우가 튀긴 듯 바삭하다. 피자 한판이 모자라 두 판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빨려가듯 해변가로 달려간다.

시간이 멈춘 듯 계속 펼쳐지는 해변의 전경이 내 안에 가득 차오르며 흘러간다.


’ 내 잔이 넘치나이다.‘ 누군가의 고백이 내 안에서도 울린다.



좀 더 달리고픈 아쉬운 마음을 간신히 달래며  이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다. 어제저녁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들 덕에 눈여겨봐 두었던 숙소 근처식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은 다 이유가 있다. 소박한 막국수와 김치, 육전, 전병 단출하지만 모두 나무랄 데 없다. 집에서 먹을 법하니 심심하고 담백한 양념은 수줍어하시는 주인 여사장님 모습 그대로이다. 진심으로 음식을 만드시는 분의 음식을 맛볼 때는 감사가 절로 나온다. 두런두런 맛난 음식과 함께 즐거웠던 여정을 마무리하며 다음 정모를 기약한다.

모든 게 고마울 뿐이다.


일상의 삶도 좀 더 힘을 빼고 내 안에 본래 있는 힘으로 가볍고 즐겁게 지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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