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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에서의 하루

십자가의 성 요한성당을 찾아서

by 바 람

이번 여행에 마드리드 주변의 도시중 세고비아를 선택한 것은 십여 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가톨릭교회 향심기도에서 전통적 뿌리로 여기는 위대한 신비가이자 영성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의 무덤성당을 찾아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시내 몽클레아역 버스터미널에서 세고비아로 출발할 때 날씨는 제법 바람이 차갑고 흐렸다. 한 시간여 거친 평야의 길을 지나 도착한 세고비아의 첫인상은 작고 평범해 보이는 유럽의 시골마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유럽의 아름다운 3대 성당중 하나라는 세고비아 대성당, 그 앞의 고목이 세월을 말하는듯하다.

언덕을 따라 골목길을 지나니 세고비아 대성당이 나온다. 건축구조가 치마폭처럼 펼쳐진 모습이 아름답다고 알려진 성당이다. 입장료 3유로. 우리나라 국립공원 곳곳의 사찰 입장료를 내는 기분이다. 어쨌든 왔으니 들어가 봐야지.

평범한 성당으로 여기고 들어간 성당내부에는 하늘에 닿을 듯 높게 뻗어있는 돌기둥들이 마치 나무줄기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있는데, 한쪽에는 십자가의 고통을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조각상이 누워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리얼하여 차마 컬러로 담기에 고통스럽고 가슴 아팠다. 이것이 스페인의 영성이구나. 문득 엘그레코의 작품 속에 있는 어둠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창백한 얼굴들이 떠오르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성당을 나서 세고비아의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골목사이 짧은 햇살에 종종거리는 까치, 평화롭다

엣 도시 끝자락에 위치한 철옹성같이 단단한 요새, 이슬람건축양식이 녹아든 아름답기까지 한 알카사르 성. 이 성안의 친절한 안내원덕에 운 좋게도 딸과 함께한 인생샷을 건질 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인 알카사르성
알카사르성에서의 인생샷
아빌라의 데레사성녀와 함께 맨발의 가르멜수도회를 설립한 십자가의 성요한 동상, 맨발로 걷는 모습, 거친 표면이 십자가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딸과 잠시 헤어져 홀로 십자가의 성요한 무덤성당을 찾아 나선 길에 우연히 십자가의 성요한 조각상이 나타났다. 그분이구나. 순간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간 안에 시간이 멈춘듯하다. 예상하지 못한 이 순간, 어떠한 설명도 없는 고요한 침묵가운데 시간을 뛰어넘어 성인 앞에 서있게 됐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가 살며시 정신을 가다듬고 성인의 무덤성당을 찾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씨덕인지 마음은 더욱 차분해지고 있다.

담장위에 편안히 햇살을 즐기고 있는 셰퍼드 한마리 그리고 나도 길을 간다.
고즈녘한 십자가의 성 요한 무덤성당 입구

진작에 구글맵을 사용했으면 헤매지 않았을 것을. 하지만 덕분에 골목길에서 십자가의 성요한상도 만나볼 수 있었고 주변을 헤매다 마리아수도원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오솔길을 따라 강변을 걷는 운치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성당은 아쉽게도 내부공사 중이라 안으로는 들어가 기도할 수 없었다. 안이면 어떻고 밖이면 어떠랴. 결국 찾아와 보고 싶은 곳에 왔다. 공사덕에 인적이 없어 한적하고 고요해진 성당이라 잠시라도 계단 위에 걸터앉아 아무런 방해도 없이 조용히 침묵가운데 머물러있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호텔로 돌아가도 되겠다.


미리 예약한 호텔은 언젠가 머물러 보고 싶던 유럽의 오래된 도시의 성 같은 곳이다.

오래됨과 새로움이 절묘한 조화로 잘 어우러져있는 호텔 내 바위같이 두툼한 벽에서 지난 이야기들이 속삭이는 것 같다. 로비의 절제된 인테리어가 그 매력을 더해준다. 잠시나마 옛 성주 같은 호사를 누려본다.

늦은 밤 딸과 함께 이곳의 돼지고기로 유명한 로컬 음식을 먹고 또 다른 유적지인 로마시대 수도다리를 찾아갔다. 깜깜한 밤하늘아래 은은한 조명에 비친 수도교는 수천 년을 당당히 버텨온 놀라운 건축기술을 뽐내며 부녀에게 이 작은 도시의 추억거리를 하나 더 만들어주었다.

밤의 로마수도교

이제 가우디를 만나러 바르셀로나로 간다.

하늘 끝에 맞닿을 듯 길게 뻗은 철길은 한편으로 우리가 가야 할 어딘가로 안내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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