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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다시 버클리

캘리포니아 햇빛

by 바 람
버클리벨타워에서 바라보이는 Bay area 전경

뉴욕생활을 하던 딸이 학업을 위해 버클리로 향한 지 2년, 벌써 졸업할 때가 되었다. 뉴욕에 비해 버클리는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했던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캘리포니아 햇빛이 주는 매력에 그만 그 모든 불편함을 깨끗이 잊게 되었다고 하니 사람은 역시 필요에 의해 적응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 같다. 사실 일 년 내내 파란 하늘에 부서질 듯 맑고 깨끗한 햇빛이 쏟아지듯 내리쬐는 매력에 빠지지 않기는 쉽지 않다. 때마침 함께 있던 룸메이트가 계약만기 전 일찍 떠나게 되어 빈방이 생겼단다. 5월 졸업식에는 굳이 안 와도 된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막상 가족들이 함께 와 축하해 주니 역시 제일 좋아했다. 살면서 사소한 기념일이라도 챙길 수 있는 날이 몇 번이나 되겠나. 뭐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벤트를 만드는 건 즐거운 일이다.

버클리 아파트에서 바라보이는 파란 하늘

졸업식이 끝나고 한창 취업전쟁에 뛰어든 딸은 실리콘밸리에서는 기대만큼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했지만 뉴욕에 있는 Ai관련 회사에 취업하였다. 참 어려운 일들을 이국땅에서 하나 둘 이루어내고 있으니 대견한 딸이다. 뉴욕으로 출근 전까지 3개월간은 캘리포니아에서 재택이 가능하단다. 아빠찬스를 쓸 기회가 생겼다. 밥 해준다는 핑계로 슬며시 다시 버클리로 날아갔다. 갈 때는 일하는데 방해되지 않게 자전거를 짬짬이 탈 계획이었는데, 한참 러닝에 맛을 들이고 있는 딸을 두고 혼자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아 포기하고 구경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참에 나도 자전거 대신 러닝을 배워보겠다고 큰맘 먹고 도전해 본다. 딸은 기꺼이 코치가 되어줬다. 달리기 좋은 공원이 곳곳에 워낙 많아 초보가 달리기 무난한 코스로 이미 코치는 찜해 두었다.

아침마다 멀리 인도와 뉴욕을 오가는 오전 줌미팅전후 잠시 짬을 내 뛰는 게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그리고 오면서 Trade’s Joe에 들러 아침장보는 것이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이다. 35년 전에 과연 이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딸과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줄이야 누가 상상이라도 했던가. 세상일 정말 알 수 없다. 하루 앞도 알 수 없다는 불안정한 청춘은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나 보다. 삶이 나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나는 모른다. 단지 희망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과 노력을 다할 뿐이다. 그 선택이 또 그 최선이 누군가에는 부족하고 잘못돼 보여도 본인에게는 최선임을 받아들이고 불안하더라도 삶을 믿고 견뎌내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결과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또다시 선택하며 노력하는 것 외에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청춘이나 장년이나 오늘은 우리 모두 처음 살아보는 새로운 날이다.

캠퍼스와 주변 곳곳을 돌아다니며 외롭게 견뎌왔던 지난 시간 위에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있다.

즐겨 찾아간 cafe, My coffee roastery
버클리힐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만 전경
버클리의 저녁노을은 정말 아름답다

버클리 주변에는 전철을 타고 4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가 있고 차로 1시간 반 정도의 나파밸리, 또 차로 2-3시간 거리의 요세미티 공원이 있다. 주말만큼은 가족과 함께 하기에 일은 잠시 미뤄두고 어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

나파밸리 Napa valley

요세미티공원 Yosemite National Park

5월 요세미티공원에서 압도적인 크기의 커다란 돌덩어리, 엘캐피탄(El Capitan)과의 인상 깊은 첫 만남 이후 이 바위산의 매력에 빠져 8,9월 2차례나 더 찾아갔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8월의 엘캐피탄
5월의 요세미티폭포
9월의 요세미티폭포
딸은 말없이 높게 자란 커다란 나무숲을 보며 한 없는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해뜨는 Tunnel view point. 양쪽으로 엘캐피탄과 하프돔(Half Dome)이 마주보고 있다.어둠이 갈라지며 빛이 솓아나는 장관이다.
8월과 9월, 햇빛에 맞춰 색을 바꿔 타봤다.
8월의 요세미티 강
9월의 엘캐피탄
요세미티 초원(Meadow), 8월과 9월의 빛이 미묘하게 다르다
8월의 하프돔 아래 숲

온종일 요세미티공원 내 숲을 돌아다니다가 해 질 녘 노을빛에 맞춰 글래이셔 포인트(Glacier Point)로 올라갔다. 그곳에선 아래숲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있다. 그 웅장하고 광활한 장관에 딸은 지금 자신이 힘겹게 부딪치는 현실의 삶이 직관적으로 작게 느껴지며 어떤 보이지 않는 커다란 삶의 힘 안에서 뭔지 모를 자유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호연지기라고 할까. 자연은 수많은 말을 말없이 전하고 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의 옆모습을 보면서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딸에게 좋은 추억과 위로의 힘을 전해주려 왔는데, 막상 좋은 추억과 힘을 얻고 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삶은 사랑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9월의 글래이셔포인트에서 바라본 하프돔


딸은 이번 여행에서 자신이 미러레이크에서 찍은 파란 하늘에 산과 구름, 숲이 어우러진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한다.


우리들의 삶도 그와 같이 각자가 존중되며 더불어 어울려 잘 살기를 희망한다.


9월 바싹 마른 미러레이크(Mirror Lake)에서 바라보는 전경



<에필로그>

1년이 지난 오늘에야 지난 2024년 버클리의 이야기가 글이 되어 나왔다. 어떤 경험들은 때론 언어화되는데 시간이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많은 영감과 추억을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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