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프랑스여행기
파리의 첫인상을 쓴 ‘파리의 첫날’ 이후, 좀처럼 다음 글로 이어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매일같이 글을 쓸 여력이 없을 정도로 많이 보고 많이 느꼈던 여행일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새롭고 즐거웠던 여행을 어떤 식으로든 글 속에 좀 더 잘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스스로의 그릇 이상으로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것이다. 그렇게 어디서 어떻게 물꼬를 틀어볼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서점에서 괴테의 ‘이탈리아기행‘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독일에서 이탈리아까지 관료생활에 무뎌진 그에게 새로운 글쓰기 영감을 불어넣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라니 내겐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역시 힘이 빠져야 글도 읽히고 나온다.
파리의 수많은 매력 중 무엇보다도 현대미술의 장을 연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날 기대감이 가장 컸다. 어차피 파리의 모든 미술관을 다 가볼 수는 없는 일, 허락된 날만큼 하루 한 미술관이라도 서두르지 않고 가보자는 마음으로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을 지그시 누르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피노컬렉션(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이미 수차례의 파리여행에 익숙한 아내가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고 또 함께 다시 가보고 싶어 했던 공간은 단연 피노컬렉션이었다. 고전과 현대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멋을 조화롭게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며 가봐야 할 곳 1순위로 꼽았다. 피노컬렉션은 구찌그룹의 회장으로 알려진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루이뷔통재단미술관을 보고 경쟁적으로 지었다는 뒷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현재의 피노컬렉션은 16세기 기원을 둔 건축물을 19세기에 지금의 원형돔 형태의 천장을 가진 건물로 개조하여 증권거래소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피노 회장이 독특한 형태의 원형돔 천장 매력에 빠져 50년 장기임대계약을 맺고 자신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만여 점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한다. 2017년부터 3년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안도다다오와 프랑스 디자이너 부홀렉형제의 합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이 역작은 2014년에 개관한 프랑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루이뷔통재단미술관(Foundation Louis Vuitton)과 더불어 비견되며 프랑스 양대 라이벌 재벌 간의 묘한 신경전과 개성을 엿보는 즐거움을 전해준다. 원형돔 천장을 그대로 재현한 중앙의 원형홀은 정말 탁월한 아이디어다. 그렇게 상상하기 쉽지 않은 공간이 펼쳐지고 곳곳에 설치된 세련된 조명과 오브제등은 절제돼 있으면서도 완성된 긴장미가 흐른다.
메인 홀에 전시된 현대미술품을 보면서 아트컬렉터로도 유명한 피노 회장의 안목에 새삼 경탄하게 된다.
예술가들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고 컬렉터들은 그러한 예술가를 발굴해 내는 뛰어난 시대적 안목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새로운 예술을 접할 때마다 그와 연결되어 반응하는 내 안의 자유로운 영혼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미술감상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보쥬광장(Place des Vosges)에 있는 빅터르위고의 집(Maison de Victor Hugo)
빅토르 위고의 집이 위치한 보쥬광장은 ‘왕의 광장’으로도 유명하고 파리의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광장중의 하나로 잘 알려진 곳이다. 주변에 즐비한 갤러리와 카페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첼시의 원조와도 같은 곳이다. 로댕이 추앙했던 프랑스최대문호 빅토르위고, 내겐 안쏘니퀸이 열연했던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 원작자. 그러한 대문호의 집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보통 영광이 아니다. 당대라면 꿈도 꾸기 어려운 시대의 혜택을 단단히 보고 있다.
보쥬광장을 중앙에 두고 사방 가득한 갤러리들은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들이라 선뜻 들어가 보기엔 좀 부담스러웠다. 아쉽지만 창문너머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몽마르트르언덕(Montmartre)
파리혁명기 파리도시개발로 도시중심가에서 밀려난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살던 몽마르트르언덕은 저렴한 임대료와 자유로운 분위기 덕에 19세기말 20세기초 인상파화가들이 모여 살면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언덕을 한참 올라 찾아간 몽마르트르미술관(Musee de Montmartre)에는 수잔 발라동(Suzanne Valdon)이라는 모델출신의 프랑스 국립미술 협회에 가입한 최초의 여류작가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당시 화가들이 작업했던 환경을 엿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전시관에서는 다소 낯선 이름의 막스밀리앙 뤼스(Maximilien Luce)의 작품들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작품들에 시선이 사로잡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함께 간 가족들을 먼저 보내는 해프닝도 있었다. 정말 세상은 넓고 예술가는 많다. 여행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는 보물 찾기와 같다.
로댕미술관(Musee Rodin)
이번 여행의 큰 성과 중 하나는 로댕미술관을 통해 조각에 대한 안목과 관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고대 그리스 비너스상과 르네상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이후 비약적인 변모를 이룬 현대조각과 자유로운 설치미술의 맥락상 연관성을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현대조각에 대한 흥미나 관심을 쉽게 갖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도 별 기대 없이 찾아간 로댕미술관에서는 바로 그 변화의 정점에 있던 한 천재조각가의 평생에 걸친 작업과정을 볼 수 있어서 조각의 외형완성도가 고전적 미의 기준에서 현대적 감성과 이성이 혼합된 형태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비어있던 미술사의 한 페이지가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가히 시대의 벽을 깨뜨리고 부화하는 예술혼의 피 묻은 부리와 젖은 날개를 보는 듯하였다. 아, 연결고리를 찾았다. 고전과 현대를 잇는, 현대예술의 장을 열었던 현장의 작업실을 찾아간 행운이었다.
로댕은 평생에 걸쳐 이곳에서 작업하였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작품들과 집이자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파리정부에 기증함으로써 현재까지 일반인이 그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주거니 받거니 참 멋진 문화다.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La maison de Claude Monet a Giverny)
아내가 이번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다는 곳, 지베르니(Giverny)는 모네가 말년을 보낸 정원이 있는 집이자 작업실인데, 오랑주리미술관에 있는 '수련'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막상 정원에 와보니 이곳에서 머물며 보고 싶은 것을 만들어 가꾸며 그리고 살아갔던 거장의 느릿한 삶이 잔잔히 전해진다. 나도 한 번쯤 살고 싶게 만드는 사계절 시시각각 변하는 정원의 매력에 잠시나마 빠져본다. 파리에서 1시간 반거리의 이곳은 모네의 아들이 모네가 죽은 후 프랑스학술원 산하 미술아카데미(Academie des beaux-arts)에 기증한 것을 바탕으로 클로드 모네재단이 설립되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귀족들의 정형화된 정원과는 달리 자유분방하면서도 풍성한 자연을 담아낸 뭔지 모르게 익숙한 동양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이나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하고 지켜낸 사람들의 영혼이 전해진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도 그러한 영감을 주기 때문이리라.
그것을 무엇으로 부르던지 네 안에 있는 본연의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드러내라. 용기를 갖고 포기하지 말며 끝까지 인내하고 지켜내며 살아내라.
고흐가 요양했던 생폴드모솔정신병원(Monastere Saint Paul de Mausole)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 '붓꽃'등이 탄생한 프랑스남부 프로방스지방(Saint Remy de Provance)의 생폴드모솔정신병원(Monatere Saint Paul de Mausole)은 고흐가 아를(Arles)에서 화가공동체를 꿈꾸다 고갱과의 마찰 끝에 쫓겨나다시피 하여 동생 테오의 권유로 자발적으로 찾아간 곳이다. ‘별이 빛나는 밤’ 원작은 현재 뉴욕 MoMA가 소장하고 있다. 고흐는 1년여간 이곳에 머무르며 143점의 유화와 150점의 스케치를 남길 정도로 생애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부터 오롯이 창작에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이곳은 고흐의 박물관과 정신병원, 수도원이 공존하며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11세기 베네딕토회의 수도원으로 처음 지어졌던 건물인 만큼 내부 교회와 회랑, 중정등이 있는 구조는 오래된 수도원 건축물의 고풍스러운 멋이 그대로 전해진다. 건물 곳곳에 전시된 그의 작품 사본들과 그가 머물렀던 소박한 방의 모습, 그리고 당시 담당 주치의의 소견등을 살펴보며 잠시나마 그의 생활을 상상해 본다. 그에게 있어 미래의 지금에야 위대한 화가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과 생애를 애정과 관심으로 대하고 있으나 당시 그가 부딪쳤던 현실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하는 여운이 깊게 남는다.
오랑주리미술관(Musee de l'Orangerie)
오랑주리미술관은 프랑스남부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며칠 남은 파리일정가운데 루이뷔통재단미술관을 갈지 마지막까지 선택에 고민했던 곳이다. 주어진 시간상 루이뷔통미술관은 파리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있기도 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랑주리로 향했다. 아침 일찍 오픈런하며 1시간 반 긴 기다림에 지쳐갔지만 막상 관람을 하다 보니 피로가 싹 가실 만큼 보상이 컸다. 2개의 전시관 벽면을 가득 채운 8점의 모네의 '수련'은 지베르니정원을 미술관내 깔끔하고 세련된 공간으로 옮겨와 모네자신이 화가이자 도슨트가 되어 펼쳐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가상현실 속 같은 묘한 느낌이다.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이지만 압도되지 않는 편안함이 관람객들을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혀 머물러 감상하도록 만든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모네가 의도했던 것도 관람객이 연못 한가운데 있는듯한 몰입감을 느끼도록 전시관을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일단 그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더욱이 오렌지 온실을 개조한 미술관이라 자연광을 살린 구조나 분위기가 좀 더 자연스럽게 지베르니 정원에 와있는 느낌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안도다다오가 설계한 가까운 일본의 지중미술관이 떠오른다. 배를 타고 들어간 나오시마섬 언덕을 따라 올라간 미술관 앞에는 지베르니를 본뜬 작은 정원이 있었고, 5점의 모네의 '수련'이 전시된 전시관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마치 세속을 벗어난 거룩한 성전을 방문하는 느낌에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던 기억이다. 같은 작품이라도 어디서 어떻게 전시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예술을 대하는 문화적 차이가 아닐까 싶다.
지하에 전시된 다양한 근대회화의 작품들 중 개성 넘치는 앙리루소의 작품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루이뷔통재단미술관과 함께 또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여행은 때론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문화와 역사라는 집단기억을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일상에서 한 발 떨어진 여행자로서 경험은 여행 후 일상의 삶 속에서도 여행하듯 적당한 거리감과 여백을 만들어 준다. 소중한 일상의 삶이지만 너무 깊이 매이지 말고 가벼이 살도록 길게 내쉬는 호흡과도 같은 선물이다.
이렇게 삶의 여행은 계속된다.